[기고] 이광은 목사의 “류광수 다락방의 위험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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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4-07-21 13:57 view586 Comment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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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은 목사의 “류광수 다락방의 위험성”에 대하여
▲ 최신광 교수(Ph, D., 렘넌트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연구교수)
현대종교 홈페이지 2024년 6월 21일자 이광은 목사의 “류광수 다락방의 위험성”의 글에서 주장한 류광수 목사의 교리에 대한 비판 중에 많은 내용은 이미 2012년과 2013년 있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류광수 목사 신학 사상 검증과 공개청문회와 2011년 4월에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 신학위원회 검증에서 문제가 없음으로 증명되었다. 이들 단체는 대면 조사 또는 서면으로 류광수 목사의 답변을 여러 신학자들이 듣고 보고 판단하여 이단이 아닌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광은 목사는 그의 글을 시작하면서 다락방을 “교리적으로 분명한 이단”이라고 단정하면서 다락방에 참여하는 교회 중에 “신실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분명히 있다는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단단체에 소속이 되어 있는데 이단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것은 그 단체가 잘못되게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그 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고 보여 진다.
또한 이광은 목사의 글과 주장에 대해 한 가지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싶다. 류광수 목사가 많은 교단들로부터 정죄되었던 1990년 중반의 상황을 다시 보여주는 데자뷰 같은 모습이다. 수많은 교단들이 다락방 전도운동(이후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단 한 교단도 류광수 목사에게 대면 조사나 서류 조사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단, 이단성, 사이비성 등으로 정죄를 하고 말았다. 가장 신중하고 철저하면서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될 이단 정죄를 당사자에 대한 조사도 없이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한 개인과 단체에 대한 이단 정죄는 그 개인과 단체에 구원이 없다는 선언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먼저 신학자들이 가장 세밀하게 시간을 들여서 근거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를 직접 면담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서류를 통해서라도 당사자의 답변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오해된 부분이 있었다면 설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실수된 부분이 있었다면 실수를 고치도록 지도를 해야 하고, 진짜 이단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그 때에 이단으로 정죄를 해야 한다.
이광은 목사의 글은 자신이 경험한 다락방을 전제로 위의 중요한 순서들을 축소하거나 생략한 다음에 다락방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이광은 목사의 주장과 글들은 먼저 류광수 목사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근거에 대한 부분이 부족하거나 곡해된 부분이 있는 상태에서 글을 썼기에 다락방에 대한 그의 일방적인 주장과 함께 많은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글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이 글에서는 이광은 목사의 다락방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주장에 대해 성경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통해 다락방이 교리적으로 이단성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1.원죄 문제에 대한 바른 이해
이광은 목사는 류광수 목사의 원죄에 대한 이해가 “사탄에게 잡혀 있는 영적 문제”로 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먼저 류광수 목사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탄에게 잡혀 있는 상태”로서 원죄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 한다. 이것을 근거로 ‘사탄 신학’이라는 용어로 그의 글 전체에서 류광수 목사의 신학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되려면 류광수 목사가 죄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탄에게 붙잡힌 상태만을 이야기해야지 그의 주장이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류광수 목사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죄를 분명히 그의 교재(복음편지 첫번째 만남)에서와 설교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설교와 훈련 강의에서 죄는 인간의 책임인 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의 원죄를 설명한 창세기 3장을 보면 분명히 뱀이 여자에게 찾아와서 말을 걸며 유혹한 장면을 볼 수 있다(창3:1-5). 인간 스스로 처음부터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 먼저 옛 뱀 곧 마귀(계12:9)가 인간에게 거짓말로 유혹을 하였고(요8:44),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불신앙,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의 원죄를 사탄의 유혹과 활동이 없이 설명한다면 성경을 바르게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또한 요한일서3:8a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이라고 설명한다. 죄인의 소속이 마귀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8:44a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하면서 죄인들이 분명히 마귀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칼빈은 인간이 유혹을 당한 장면에 대해 “더욱 완전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말하며“뱀의 사술에 이끌린 여자는 불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으므로, 불순종이 파멸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하다”라고 밝혔다(『기독교 강요』 2.1.4).
또한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거역한 것은 사탄의 꾐에 사로잡혀서일 뿐만 아니라 진리를 멸시하고 거짓에로 치우쳤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한다(『기독교 강요』 2.1.4). 다른 곳에서도 창세기 3장의 말씀에 집중하면서 “마귀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순종으로부터 사람을 멀어지게 유혹해서하나님께 마땅한 영예를 손상시키는 동시에 사람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집어던진다”라고 인간의 타락에 대한 마귀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다(『기독교 강요』 1.14.15). 칼빈도 분명히 사탄의 유혹이 인간의 불순종의 죄의 시작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마귀의 저주들에 사로잡힌 아담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하나님의 영광을 소진시키고 말았던 것”이라고 인간의 상태를 설명한다(『기독교 강요』 2.1.4).
칼빈은 요한의 설명을 통해서 “마귀 자신을 모든 악과 불법의 조성자, 지도자, 고안자”로 밝히고 있다(『기독교 강요』 1.14.15). 그는 “더러운 영들이” 세상에서 “불경건한 자들을 굴복시켜 끌고 다니고, 그들의 영혼과 육체 위에 주권을 행사하고, 마치 포로와 같이 모든 수치스러운 것으로 그 영혼과 육체를 학대한다”고 설명한다(『기독교 강요』 1.14.18). 칼빈의 설명과 같이 불신자들은 죄인으로서 지금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영혼 속에 사탄의 나라를 허용하지 않으시고, 그가 자기 무리에 속한 지체들로 여기지 않으시는 불경건한 자들과 불신자들만 사탄에 의해 통치를 받게 넘겨주신다”(『기독교 강요』 1.14.18). 결국 칼빈은 “[불경건한 자]들은 그들의 아비 마귀로부터 존재한다고 한다(요8:44). 왜냐하면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식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듯이, 타락하여 사탄의 형상을 지니게 된 사람들은 그 형상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자녀들이라고 여겨짐이 마땅하기 때문이다(요일3:8-10)”라고 주장하였다(『기독교 강요』 1.14.18).
칼빈은 죄인이 “성경이 가르치듯이, 자기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으며, 진노의 상속자였으며, 영원한 저주의 죽음에 매여 있었으며, 구원의 모든 소망에서 제외되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은총 밖에 있었으며, 사탄의 노예였으며, 죄의 멍에 아래에 있는 포로였으며, 무서운 파멸에 이르도록 정해졌으며, 이미 그 파멸에 연루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기독교 강요』 2.16.2).
칼빈의 설명을 요약하면 인간의 원죄에 마귀의 유혹과 거짓말이 있었으며 불순종과 불충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인간은 마귀의 자녀로 사탄의 지배와 통치 속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2.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하여
이광은 목사는 “다락방은 선지자와 제사장을 언급하지만, 결국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왕을 강조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왕적 그리스도”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복음을 전하는 점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은 그리스도의 삼중직 중 왕적 사역이 다락방의 현장사역과 다락방을 하는 교회에서 강조된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현장의 악령들린 자와 악령으로 시달리는 자들을 전도하는 경우는 더욱 많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각 교회의 설교와 현장 다락방 모임과 류광수 목사의 훈련 강의와 설교를 들을 때에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매번 듣고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에 왕직만을 말한다면그것은 나머지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만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을 말하면서 왕직을 말하며 때로는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보수적 기독교 전통 안에서 제사장직만 강조하고 선지자직과 왕직은 조금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칼빈은 예수님이 중보자이시며 “선지자이자,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주어진 그리스도임을 설명하였다(『기독교 강요』 2.15.1). "특별히 메시아라는 직분이 왕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특별히 왕권과 관련해서 또 왕권 때문에 메시아라고 일컬어진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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