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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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할소리냐 22-09-26 21:26 view6,786 Comment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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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일에서 마지막 사임메시지를 하면서
결국, 담임목사는 사임하지만
본부로 갈수도 있다
어딘가 개척할수도 있다
다시 만날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당당하더라
혼외자가 벌써 20세
다락방 대표사역이자, 세복을 위한 핵심사역하러 미국가서
교회후원금으로 불륜녀와 살다가 돈떨어지니 다시 돌아와서 해먹을려해놓고,,
누가 사임하래서 바로 떠난다.
하는짓들도 똑같은데
생긴것도 정말 닮아가네,,,
어디서 어떻게 다시만날까? 상임위에서 만나겠지? WRC에서 보겠지?
아니면 9시 뉴스에서 보게 되려나?
암튼 새로오시는 목사님께 희망을 걸어본다. 잘가시라..
댓글목록
욕심이잉태한즉죄를낳고님의 댓글
욕심이잉태한즉죄를낳고퇴직금과 40평 아파트는 이미 수령하셨고 임시당회에서 위로금과 원로목사 대우를 요구하셨다고 합니다.
모세님의 댓글
모세그걸 왜줍니까? 꿍치고 가져간돈 토해내도 모자랄 판인데
*****교회일이니님의 댓글
*****교회일이니*****교회에 물어보시죠.. 저는 들은 사실을 적었을 뿐입니다.
와치맨님의 댓글
와치맨3억 달라네요
먹고떨어져라님의 댓글
먹고떨어져라다시는돌아오지마라
날기새님의 댓글
날기새
https://youtu.be/wu4_kTVewWA
[날마다 기막힌 새벽 #1033] 충성된 종의 아름다운 끝 모습(삼하19:31~39)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1981년 12월 27일 마지막 주일 오후에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다. 임택진 목사님이 우리 한국교회 정년 법을 제안하신 분이다. 목사님은 65세 정년을 하자고 제안을 하셨는데 우리 총회에서 은퇴 법은 받아들이되 정년을 70세로 정해서 지금까지 한국교회들이 대개 정년을 70세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목사님은 자기가 제안하신 대로 그냥 65세 은퇴하셔서 제가 그날 사회하면서 은퇴식을 했었다. 23년 동안 충성스럽게 목회하신 교회를 은퇴하시는 날 은퇴사가 참 감동적이었다. 한 10초도 걸리나 마나 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17장 9절. "명한 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게 은퇴사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았다. 평생 수고한 것에 대해서 공치사하지 않고 "마땅히 할 일을 한 것 뿐이니이다." 하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사례 요구하지 않고 깨끗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때 제가 31살이었다. 다음 주일이면 물론 32살 되는 나이인데 31살 부목사도 이제 한 1년 반 이렇게 됐을 때인데 그게 젊은 목사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 제가 결심했다. '나도 저렇게 은퇴해야지. 나도 은퇴식 때 저렇게 은퇴할 거야.' 결심을 했다. 목사님은 은퇴하신 후에도 참 깨끗하셨다. 교회 일체 간섭을 안 하시고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관여하지 않으셨다. 자기가 손대면 교회가 어지러워진다고 교회를 깨끗이 떠나시는 모습 보여주셨고 이제 목사님은 원로 목사님이 되셨는데 원로 목사 대우가 제가 볼 때는 조금 섭섭했다. 다른 교회보다 목사님을 조금 소홀히 했다 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좀 섭섭한 마음이 있어서 목사님하고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여쭤봤다. "목사님 섭섭하지 않으세요? 제 마음이 다 좀 섭섭한데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정색을 하시고 저한테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섭섭하긴. 효자 아들보다 낫지. 어느 아들이 매달 나 그렇게 생활비를 꼬박꼬박 줘? 감사하지." 충격이었다. 감사할 줄 알고 "어느 아들이 나한테 매달 생활비를 꼬박꼬박 줄 수 있어? 효자 아들보다 낫지." 그 마음을 제가 참 감동적으로 배우고 그 흉내 내려고 무진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날기새 하면서도 자주 예화처럼 인용했던 말씀이 있다. 우리 청량리중앙교회가 그저 200명 남짓 모일 때 강남 쪽에 있는 어느 큰 교회가 그때 한 7~800명 출석 그때는 대형교회다. 한 7~800명 되는 큰 교회에서 청빙이 오셨다. 목사님 마음이 조금 움직이셨던 것 같다. 그걸 장로님들이 눈치를 채고 선임 장로님이 목사님 못 가게 막으셨다. 근데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얘기하셨다. "목사님 큰 교회 가면 생활비 많이 드려서 그러십니까? 우리도 다음 달부터 목사님 생활비 올려드리겠습니다. 가지 마세요." 그때 참 우리 목사님이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다. "소시장에 묶어 놓은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시장의 소 아닙니다. 돈 더 준다고 가고 안 준다고 가고 제가 소시장의 소입니까?" 제가 그 이야기를 청량리중앙교회 45년사 준비하다가 듣게 되고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래서 마음에 평생 결심했다. '소시장에 소 노릇하지 말아야지. 명한 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게 어렸던 젊었던 저에게 끼쳤던 목사님의 아주 치명적인 영향력이었다.
2016년 12월 마지막 주일 저도 드디어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1981년에서 2016년이니까 시간이 꽤 걸렸다. 한 35년? 그렇게 걸린 것 같다. 35년 그 정도 걸려서 제가 꼭 그대로 흉내 냈다. 누가복음 17장 9절. "명한 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이다." 그 말씀하고 사실 저는 은퇴식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마지막 설교하고 교인들한테 인사하고 교회를 떠났었다. 2016년 1월 첫 주일 눈을 딱 떴다. 그때 제 마음에 들어온 생각이 '아, 올해 드디어 은퇴하는 해다.' 이제 1년 남았다. 그해 마지막 주일날 은퇴할 거니까 2016년 드디어 나도 은퇴하는 해의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신 단어가 있다. 영어 단어로 생각났다. 'enough' 충분하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셨다. 근데 제가 아멘 했다. "하나님 충분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왜 그 단어를 주셨는지 안다. "욕심부리지 말아라. 교회에 뭐 요구하지 말아라. 너 이미 충분히 잘 받았다." 우리 목사님 때는 고생 많이 하셨지만 저는 교회가 커지고 부흥해서 잘 대우받고 살았는데 부족한 게 뭐가 있나? 교회에 요구하지 않겠다. 'enough' 그것이 제가 나름대로 은퇴 무사히 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제가 늘 날기새에서 예화로 드는 말씀, 느보산의 모세. 평생 광야에서 고생한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었다. 저는 그것이 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훈장 달아주고 가나안 땅에 좋은 자리 만들어 놓고 쉽게 말하면 원로 자리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그러다가 영광을 받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옳아 보이는데 하나님은 초라하게 묘도 쓰지 못하고 느보산에 홀로 올라가서 죽게 하셨다. 이게 제 마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근데 나중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모세의 모든 공을 살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는 것, '하나님의 수'였다는 것.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모세가 거기에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저였다면 불평하면서 올라갔을 것이다. 툴툴 툴툴 불평하면서 "죄송합니다." 주둥이 대빨 나와 가지고 원망하면서 불평하면서 그러고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원망하지 않았다. 모세가 원망하지 않고 느보산에 올라갔다는 증거가 있다. 그것은 모세가 올라가기 전에 여호수아를 축복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한 것이다.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축복할 수 없다. 백성을 축복하고 여호수아를 안수하고 축복했다는 뜻은 그 일에 섭섭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명한 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하는 그 충신의 마음의 정신이 모세에게도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참 오랫동안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준비했다. '하나님 느보산의 모세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 본문에 그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 바르실래라는 사람이었다. 큰 부자였다고 나온다. 다윗 왕이 피난 시절에 바르실래가 위험을 무릅쓰고 압살롬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다윗을 공궤해서 다윗이 큰 신세를 지었던 사람이다.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바르실래를 데리고 가려고 그랬다. 갚으려고. "이제는 내가 너를 공궤하겠다." 왕이 자기 백성을 공궤한다는 말을 쓰는 것은 얼마나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있었으면 그런 표현을 썼겠는가? 바르실래는 정말 영웅이 되는 것이다. 공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뜻밖의 얘기를 한다. "제가 팔십입니다. 이제 올라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냥 다윗 왕, 임금님을 무사히 잘 공궤하고 이제 다시 올라가시는 길, 그것만 도와드리고 제 일은 다 끝났습니다." 바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다른 자기 있던 여기 이름이 나오는데 김함이라는 사람을 추천하면서 "그 사람을 상 주십시오. 그 사람을 데리고 가십시오." 하고 바르실래는 자긴 그냥 조상들이 있는 데서 "여기서 죽어서 세상 떠나겠습니다." 공을 세우고 그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는다.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더 머물려 하지 않는다 하는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정신인지 모른다.
한국교회는 충성교회, 충성한 종들이 참 많다. 충성한 종들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많이 성장했다. 그런데 사탄은 충성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자꾸 유혹한다. "네가 얼마나 수고했냐? 네가 얼마나 헌신했냐? 이 교회가 이렇게 된 게 다 네 덕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좀 누려도 돼. 부려도 돼. 상 받아도 돼. 영광을 받아도 돼." 그런 욕심에 눈 어둡게 해서 교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평생 쌓아왔던 자신의 그 모든 수고도 다 헛되이 무너뜨리고 불행한 노후를 맞는 목회자들이 더러 있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이 주제로 이 말씀, 오늘 같은 내용의 말씀을 여러 번 지금 날기새에서 다루고 있는 것 여러분 아실 것이다. 충성하자. 누구보다도 충성하자. 헌신하고 하나님 섬기고 하는 일에 2등 하지 말자. 다윗을 왕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 되지 말자. 우리 며칠 전에 다룬 것처럼. 그러나 그 후에 그 대가를 바라지 말자.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자. 영광 받으려고 하지 말자. 우리도 다 느보산에 올라가자. 느보산의 모세 같은 사람이 되자. 바르실래와 같이 왕을 잘 섬기고도 그 공을 탐하지 않고 그냥 자기 고향에서 조용히 느보산에서 죽은 모세처럼 생을 마치려고 하는 바르실래와 같은 믿음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주의 몸 된 교회는 더 강건하여질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 그렇게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실 줄을 믿는다. 충성한 후에 사양할 줄 아는 사람, 명한 대로 다 행하고도 사례를 바라지 않는 사람, 사례를 바라고 충성하지 않는 사람, 그냥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귀해서 죽도록 충성하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로 충분합니다." 하고 깨끗이 욕심부리지 않고 교회에 자리나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깨끗이 느보산에서 우리의 삶을 마칠 수 있는 바르실래나 모세와 같은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날기새 식구들 중에서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
바르실래에게서 배웁니다. 다윗 왕을 잘 공궤해서 다시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바르실래를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네가 나 어려울 때 공궤했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을, 바르실래를 공궤하겠다."고 그런 표현을 쓸 만큼 바르실래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르실래는 그걸 누려도 됩니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그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거 바라고 왕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왕을 공궤한 것으로 기뻤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까 너무 감사합니다.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하고 깨끗이 공을 사양하는 바르실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충성한 후에 인간적인 욕심이 지나쳐서 그 대가를 바라고 그 대가를 누리므로 교회를 어지럽히게 하고 평생의 수고와 목회를 다 무너뜨리는 어리석음 우리는 범치 아니하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바르실래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느보산의 모세의 마음을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같은 내용의 설교 꽤 여러 번 한 것 같다. 충성하자. 그러나 그 대가를 바라지 말자. 그것을 요구하지 말자. 공을 세웠다고 내 것이라고 하지 말자. 내 것이라고 하지 않으므로 머물려고 하지 않고 깨끗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 살아가자 하는 내용의 날기새 설교를 꽤 여러 번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 말씀이 우리 날기새 가족들에게 이루어져서 부족한 우리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좀 더 아름다워지고 또 깨끗해지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우리 날기새 가족들도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한 정당한 대가를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