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포럼

이거 한번 보시고 같이 포럼 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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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23-03-23 08:37 view41,681 Comment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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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보시고 포럼 해봤으면 좋겠네요..

강서 [ㅇㅇ교회] 주일예배 2부 - 나의 모든 것, 예수 그리스도! - ㅈㅅㅁ 목사- 2023.03.19.

유투브에서 위에 제목 검색하셔서 메세지 보시면 됩니다. 빠르게 보시려면 30분 부터 보시면 됩니다.

보신 분들과 함께 포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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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참님의 댓글

들어봤습니다. 안타깝군요. 결국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영지주의 같네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저도 듣고 너무 이상해서 한~ 참 생각 했네요. 영상 뒷부분에 넷플릭스 이야기도 들어보세요.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시간 없으신 분들을 위해...

지금 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완전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행위도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삶도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저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를 논하려면 완벽하게 100%여야 합니다. 99.9%도 하나님께는 0%이며 충분치 못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딱 하나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하나님께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롭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평가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지가 아닙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99점이고, 1점이고 다 빵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마음으로 짓는 죄나 행위로 짓는 죄나 다 죄입니다. 그러면 실수하고 죄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실수를 안 합니까?. 죄를 안 짓습니까?. 방종하라는 말입니까? 방종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합니다. 삶 속에 규모 없음이 방종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 누리지 않고 여전히 율법주의를 지향하고 주장하며 사는 것이 방종입니다.

 

만약 삶의 정직함과 성실함이 복음이라면 하나님은 들키지 않고 걸리지 않은 죄는 덮어주시는 이상한 하나님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의인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걱정할 이유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여전히 나는 의롭고 완전함을 믿고 누리면 됩니다. 끊어질까, 버리실까 노심초사하며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실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영상 끝에 넷플릭스 이야기도 들어보세요^^

oo님의 댓글

oo 댓글의 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해당 교회 홈페이지의 요약문에서 30분 다음 부분을 그대로 발췌해 온 것입니다. 넷플릭스 이야기는 그 뒤에 있는데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복음주의(antinomianism)님의 댓글

반복음주의(antinomia… 댓글의 댓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음이 맞습니다. 롬1:17에서 언급했듯,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행위가 절대 구원을 받는 영역 속에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죄사함을 얻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죄에서 자유했단 말은 다시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요.

물론, 그럼에도 인간은 넘어집니다. 그럼 또다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됩니다.

ㄷㄹㅂ에서 말하는 복음은 인간은 어차피 넘어지고 연약한 존재니 넘어져도 상관없다, 그러니 자유하라 라는 얘기에서 이것을 점점 강조하다 보니 이젠 죄 지어도 상관없다 좀 지으면 어떠냐 어차피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음인데 뻔뻔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라. 이런 얘기입니다.

너무 맞는 말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 달콤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차피 행함과 삶이 안되는데 그것 때문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복음 자체만 누리면 된다 하니 거기서 새로운 자유(이것을 방종이라 합니다)를 누리게 되는 거죠.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서 자유하다는 얘기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니 그 분의 사랑이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감사하며 그 은혜가 벅차서 죄에 다시 빠질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인간인지라 또 죄짓고 넘어지기도 하겠지요. 성경에선 그럴 때에도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ㄷㄹㅂ의 복음은 반율법주의(antinomianism) 이며 이는 이단 사상에 속합니다. 반율법주의는 사람이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매우 성경적인 모양새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므로 그 어떤 행위도 신앙(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실질적 방종주의를 전파하는 교리입니다. 반율법주의는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에게 동시에 시작되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성화)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화와 무관한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목사들의 성비위, 돈문제 등이 만연해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사실의 결과인 것입니다.

ㄷㄹㅂ의 성도들은 이러한 교리를 듣고 있다 보니 여기에 세뇌되어 이것이 마치 복음인양 따라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범죄를 저지른 목사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양상을 빚어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체에서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 우리는 영원을 사는 사람들이지 잠시 있을 육신의 즐거움을 택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진리를 선택해야지 이상한 논리를 택해서는 안됩니다.

이단의 뜻이 무엇인가요? 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초창기에 뜨거웠나요? 30년의 결과가 뭔가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대로!!!님의 댓글

성경대로!!!

롬6:1-15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된 사람은 이제 죄 짓기를 혐오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성경적이지 않나요??? 물론 육신이 연약하기에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방관하는 것은 복음 가진 자의 자세가 아니지요.
율법과 율법주의는 구분하셔야죠.
복음부터 이해가 안되신 것 같네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 합니다. 복음을 이해 못한 것 같습니다.

oo님의 댓글

oo 댓글의 댓글

맞습니다.
저 분 메시지는 성경 말씀의 한 부분만 발췌해서 오도하는 여증이나 다를 바 없이 느껴집니다.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해당 교회 홈페이지의 요약문에서 30분 다음 부분을 그대로 발췌해 온 것입니다. 넷플릭스 이야기는 그 뒤에 있는데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oo님의 댓글

oo

RTS는 조직신학 안 가르치나요?
칭의만 배우고 성화는 못 배우신 듯 하네요.
아직도 단체가 정치적 의도로 이단정죄됐다고 하시는 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네요.
강조점의 문제라 할 수도 있겠고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는데
강단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좀 더 느끼셨음 좋겠네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강단에서 어떻게 저렇게 표현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어떤 무슨 이유로? 정말 답답합니다. 뒤에 넷플릭스 이야기도 한번 들아보세요.

ㅎㅎㅎ님의 댓글

ㅎㅎㅎ

칭의 없는 성화 없고 성화 없는 칭의는 없습니다.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중 하나가 칭의와 성화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나용화 목사님 강의좀 들어보셨으면 좋겠네요.

로마서 9강 로마서 6장 칭의와 함께 누리는 유익, 성화
https://youtu.be/LWeFo5qsd_Q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영상 공유 감사합니다.

십자가사랑님의 댓글

십자가사랑

후대 목사들마저 저 생각을 가지고 목회를 한다면 더이상 이 단체에도 미래가 없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정말 걱정 입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풀어가야할지 모를 정도로 답답 하네요.

ㅠ님의 댓글

신학교를세웠으나, 제대로된 신학을 가르치지 않은 결관지요.
복음이면 다 된다는 말이 이런 오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여러 문제들을 방관하고 외면하며 숨어버리기에 참 좋은 핑계꺼리가 되었구요.
안타깝습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왜 RTS 나 RU 둘다 정식 인가 학교로 만들지 않는 걸까요? 제대로 학생들 가르칠 생각이 있는 걸까요?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RTS나 RU를 정식인가학교로 못만드는 것은 교육청 산하 정식 인가 대학 기준 미달이기 때문입니다.
정식 인가 대학의 경우 각종 지원 혜택이 있으나 여러가지 제약 사항이 없지 않고
지금 상황이라면 정식인가 대학이 되지도 못하겠지만, 된다고 해도 바로 퇴출될겁니다.
상황은 이해하고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원없는비진리님의 댓글

구원없는비진리 댓글의 댓글

RU 주정부 인가 되어 있읍니다.
RTS는 의지가 없다 봐야죠. 인가 나면 전도캠프 못한다고 이런걸로 생색내는데 궤변 아닌가요?  그냥 인가 받을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어요.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RU가 완전 정식 대학인가는 아닐텐데요?
그리고 RTS 정식인가는 그런 제약 사항때문에 못하는 것도 맞겠지만, 인가 자체가 불가능하긴 합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RTS, RU 둘다 전도에 목숨 걸며 30년을 뛰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인기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그게 더 심각하네요. 미래가 안보입니다

판독기님의 댓글

판독기

주일예배 인걸보니 차세대 인물이신가 보군요
전형적인 카리스마 앞세운 말로 조지는 사짜 스멜이 나는군요

음..님의 댓글

음.. 댓글의 댓글

J장로 아들이구요 늘 그렇듯이 Y교회도 나중에 결국은 친인척에게 바통을 넘겨주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설교 자세히 보면 자신감이 뭍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무조건 거르셔야해요. 성경(하나님 말씀) 앞에 선다면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하다고 생각해요.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뒤에 넷플릭스 이야기까지 다 들어봤습니다.

요약문은 조금 중의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성화가 없거나 언급하신 것과 다른 성화를 말하는 것은 아닌 뉘앙스입니다.
좀 격앙된 어조가 있는 것은 분명하나 설교문을 읽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고요.
율법주의에 빠진 채 복음의 이해 없이 억눌려 성화가 강요되어서는 안되므로 그 기준을 바꾸라는 의미로 이해되었습니다.

저도 처음보는 설교자입니다만 (장로님 아들이군요)
저는 오히려 현 ㄷㄼ 세태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그 기준을 바꾸는 것 자체도 큰 잘못된 방향이라 생각 합니다.
그리고 메세지를 받는 사람이 잘 걸러서 받는다면 괜찮지만 온 성도들이 듣고 있고 분명히 오해 할 만한 사람들이 있을텐데 강단에서 그렇게 쉽게 말한다면 목사로써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 합니다. 복음이 복음되게 하려면 죄를 빼놓아서는 절대로 복음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점에서는 분명함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네, 요약문도 오해가 충분하고 (녹취록이 아님), 실제 들어도 조금은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일 설교에서 헛갈리는 메세지를 하는 것은 목사의 자격까지는 몰라도 설교학은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나 싶긴 합니다.

그렇지만, 죄를 빼놓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준을 바꾸라는 것이 잘못된 기준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잘못된 기준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 누리지 않고 여전히 율법주의를 지향하고 주장하며 사는 것이 방종"이라는 표현에서 보면 여전히 율법주의를 지향하고 주장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초점이 율법주의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죄를 빼놓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초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준에 대한 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초점이 다른 것이겠죠.

그렇지만, "만약 삶의 정직함과 성실함이 복음이라면 하나님은 들키지 않고 걸리지 않은 죄는 덮어주시는 이상한 하나님이 됩니다. "라는 표현에서 보면 결국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걸 삶의 정직함과 성실함은 복음이 아니다라고 이해하면 정말 곡해하는 것이고, 삶의 정직함과 성실함으로도 우리는 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해야겠죠. 결국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감각하게 살거나 방종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끊어질까, 버리실까 노심초사하며" 살지 말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가 너무 온화하게 이해한 것일까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여기서 이제 교리적 차이가 나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감각하게 살거나 방종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끊어질까, 버리실까 노심초사하며" 살지 말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죄에 끊어질까 버리실까 노심초사가 아니라 죄를 짓더라도 무시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회개의 고백 입니다. 그것 하나 하는 것이 그렇게도 잘 못 된 건가요? 죄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이 아닌 죄에 대해 직시하며 더욱 그리스도 생각히고 붙집는거죠. 저 설교안에는 그런 깊은 복음이 나오는 것이 아닌 아주 간단 심플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다 끝내셨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이미 다 해결 했다 말하며 힘을 주려고 한 메세지 죠. 허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고 나의 주인이 되아야 하는데 복음이 너무 빈약하게 들어나지 않나요? 복음 누려야 한다먼서 무엇을 누리고 있는건지 힌번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있는 걸 누리는게 어떤 건지~ 그냥 단순히 기도? 물론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 한다고 생각할수 있죠. 근데 그게 복음 누리는 건 아닙니다. 복음 누리는거 어떻게 누리는지 이야기 하면 애매모하게 말 할 껄요? 3오늘 붙잡아라 뭐 그렇게 이야기 하겠죠.

근본부터 잘 생각 해야하고 그민큼 교리적인 부분도 잘 보셔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ㅁㅁㅁ님의 댓글

ㅁㅁㅁ 댓글의 댓글

초점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삶의 자세에 있어서 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자신의 행위로 책임을 져야 할 것같은 불안감에서 복음으로 해방되라는 것이 설교의 초점으로 보입니다. 죄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드시 회개를 이야기해야 합니까? 회개를 말하는게 잘못된 것이라고 절대 생각은 안합니다만, 다른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꾸 이 이야기안한다고 하면 서로 논점이 다르다고 밖에 이야기를 못하겠네요. 죄의 회개 그 이후 복음으로 해방이라는 순차적인 메세지가 아니라 죄 자체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일단 하는 메세지라고 생각하면 안되나요? 내용이 투박하고 전개가 전체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전달하려는 메세지 자체를 잘못이라 지적하면 모든 설교는 본문에 따라 모두 동일하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도 병자를 치유하시고 난 이후에 자신의 나음을 보이고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설교 하나로 뭔가를 이야기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저는 ㅇㅇ 교회 메세지를 계속 듣는 건 아니라 어떤 내용이 계속 오고 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 분이 꾸준이 저 하나만 이야기하는 분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권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저 분이 어떤 분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일례로 치부하기에도 하나의 짧은 설교는 충분히 논의할 거리가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성경님의 댓글

성경 댓글의 댓글

이번주 ㅇㅇ 수요예배 들어보시죠. ㅈㅅㅁ 목사가 설교했는데 더 가관이더만요.

그리고, 죄 자체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참 복음을 알려줘야지여.

반드시 회개를 얘기해야 합니다. 그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다른생각님의 댓글

다른생각 댓글의 댓글

복음을 이야기 할때 죄를 빼놓고 이야기 할수 없다고 하셨는데 말쓴은 동의가 되지만 강단에서 꼭 그래야하는가는 좀 다르다 생각합니다

교회야 말로 거지(죄송합니다)부터 부자까지 꼬마부터 노인분들까지 미취학 학생부터 대학교수와 박사까지 다 모이는 곳입니다. 

어느 기준에
맞춰서 설교를 해야 할까요…
저는 그래서 각 부서가 존재하고 각 나이에 맞는 주일학교 청년 대학 모임이 존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속에 담당 사역자가 있는 이유 역시 같은 이유라 생각합니다..

이해가 부족하거나
설명이 부족하거나
적용이 부족하거나 할때
각 파트의 담당자가 그 역활을 매꿔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기준은 성경 입니다. 성경에 대해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게 목사의 사명 입니다. 성경 그대로 하면 따로 구별해서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다 같이 예배 드리는 거죠. 왜 하나님 말씀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어린 아이들에게 거지들에게 부자들에게 말 못하나요? 말 더 해야죠. 그게 하나님 말씀이라면 해야죠.

진심님의 댓글

진심 댓글의 댓글

성경대로 가르치면 유치원생도 알아듣고 대학생도 알아듣는단 말입니까.?
사용하는 단어의 숫자도 다 다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초심님 이야기 하시는 교회 한곳만 말씀 해주세요

초심님 말쌈대로라면 성도들 간의 말씀 포럼이나 중간 사역자는 존재할 이유가 없겠네요.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제 뜻은 성경 그대로 깅단에서 메세 해야 한다는 것을 초점으로 말씀 드린 겁니다.

 성경 그대로 하면 따로 구별해서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다 같이 예배 드리는 거죠.

이 부분에서 걸리시는 부분이 있으실텐데요. 어느 정도는 오해 하실 만 하구나 생각이 되서 이 부분은 제가 실수 인정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죄송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근데요. 최소한 주일 강단에서 메세지 하는 목사는 특별한 대상을 놓고 메세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아까 죄 부분 말씀하시면서 주일 강단에 꼭 그래야 하나? 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그 대답으로 성경에 있는 내용이라면 그대로 전해야 한다고 말씀 드린 것 입니다.  그리고 어느 기준에 맞춰 설교라고 하셨죠? 그 대답에서도 성경을 그대로의 메세지를 하면 그 기준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씀 드린 겁니다.
그리고 주일 강단은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대상으로 메세지 한다면 그건 잘 못된 메세지라고 생각 합니다.

포럼을 주제로 말씀 드린 메세지는 그 때문에 잘못 됬다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성경 66권 전체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많이 듣고 말씀하셨죠? 그쵸?

모든 예배에서 강단은 성도들과 함께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메세지를 그대로 들어야하고 그 메세지를 통해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강단에 설 목사님들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 메세지를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며 설교 준비하죠. 근데 ㄷㄹㅂ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강단 메세지로 나의 시간표대로 인도 받는 다는 생각 자체가 있기 때문에 오는 오류라 생각 합니다. 강단은 나의 시간표대로 인도 받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 다 깊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겁니다. 올바른 성경관부터 싹 다 바꾸 셔야 합니다.

선을 넘는 주장님의 댓글

선을 넘는 주장 댓글의 댓글

나의 시간표라는게 지금내가 있는 그자리와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심을 듣는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의미가 내가 원하는걸 듣겠다가 아닌것 같습니다? 

단순한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 했을때
나의 이웃이 단순히 옆집일수도, 회사 옆자리 동료일수도, 학교짝꿍일수도, 더 위러 선생님일수도 있잔습니까.. 이게 다 같은 메시지로 각자의 시간표대로 듣는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초심님 어떤 기준에서 이야기 하시는지 해석을 한번 해주시죠..

초심님의 댓글

초심 댓글의 댓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임을 인정 합니다. ㄷㄹㅂ안에 있을 때 강단 메세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를 붙잡고 실천하려 했었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이야기를 드렸던 것 같네요.

제 뜻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안에서 주시는 메세지를 통해 그리스도로 더 풍성한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뜻 에서 말씀 드렸던 겁니다.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