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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나는왜 다락 방에 있나 -박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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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 24-07-08 00:27 view1,090 Commen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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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다락 방에 있나?

 

 저 메시지는 95년 집회메시지다. 나는 95년에 다락 방에 들어갔다. 얼마 전 우연찮게 저 메시지를 들었는데 그때 내가 왜 다락 방에 빨려갔는지가 쉽게 이해가 됐다. 나는 동영상에 있는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저런 분위기와 저런 메시지에 그때 내가 빨려들 수밖에 없었겠다 생각이 됐다.

 중3때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에 매진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신앙생활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좋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설교말씀을 듣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붙잡은 것은 모든 공예배 빠지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결단한 날부터 나는 수련회로 나가있는 날을 제외하고 고2 때까지 3년여간 새벽기도를 제외한 교회의 모든 공식예배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새벽기도도 가끔 빠졌지만 3분의 2 이상은 나갔던 것 같다. 

 

두 번째 실천한 것은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고3 졸업할 때까지 수련회 등으로 외박을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교회 가서 기도하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집 들어가기 전 반드시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왔다. 심지어 고3때 새벽4시, 5시까지 공부하고 와서도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집에 갔다. 고3때는 기도하다가 기도실에서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었던 적이 두 번 정도 있다. 아침에 집에 없으니까 어머니가 교회 기도실로 나를 깨우러 오셔서 집에 안 들르고 바로 학교로 가기도 했다. 세 번째 실천한 것은 말씀을 매일 읽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성경읽기를 3년여간 거르지 않았다. 네 번째 실천한 것은 모든 우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나의 우상1호는 그 말씀 들었을 때 산지 딱 10일 된 수퍼패미콤 게임기였다. 나는 게임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이 게임기를 사주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게임기 가진 친구들 비위를 맞춰가며 게임기를 몇 일 빌려서 놀다가 돌려주곤 했다. 그러다가 고교입학 연합고사를 마치고 비는 시간에 어머니를 설득해서 고등학교 가면 공부 열심히 할테니 게임기 사달라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 내가 산 게임기는 내가 친구들에게 빌려서 놀던 1세대 패미콤보다 훨씬 좋은 2세대 수퍼패미콤이었다. 그 말씀 들은 그 다음 날 구입한지 10일만에 게임기를 다시 팔았다. 살 때 가격은 20만원이었는데 팔 때는 10만원에 팔았다. 그래도 말씀 따라가는 게 좋았다. 

 

나는 만화책을 무척 좋아했고 몇 년 동안 용돈을 받는 족족 마음에 드는 책은 다 사서 소장하고 모았다. 우리 집에 만화책이 족히 천 권은 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빌려보는 만화책은 대부분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몇 년간 모은 내 보물 같은 천 권이 넘는 만화책을 그냥 다 버렸다. 그렇게 해서 말씀 따라갈 수 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째는 인간을 멸망시키는 3S를 버리는 것이었다. 스크린, 섹스, 스포츠. 나는 그날부터 TV, 영화 다 보지 않았다. 식당에 가면 일부러 TV를 등지고 앉았다. 또,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경기 관람을 포함하여 각종 스포츠를 즐겨 응원했지만 이 날 이후로 모든 스포츠를 보지도 않았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었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중3 때 강하게 은혜받은 후 한 달 안에 다 되어졌던 것 같다. 

 

그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말씀을 듣는 족족 실천했다. 우리교회 고등부에서 신약성경 매일 한 장 쓰기를 했다. 시작은 다 같이 했는데 나중에는 나 혼자 쓰고 있었다. 1년을 지속해서 디모데후서까지 썼던 것 같다. 정식예배 말고도 교회의 모든 모임이라는 모임은 다 갔다. 내가 5살때부터 다녔던 수영로교회는 꽤 규모가 있는 교회라 여러 프로그램이 많았다. 교회에서 온누리교회에서 하고 있는 1:1양육 프로그램을 몇 달에 걸쳐 매주 수요예배 후에 교육했다. 나는 그것도 다 들었다. 거기서 QT에 목숨 걸어야겠다 결단했다. 일단 QT를 시작하니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깊이 누려졌던 것 같다. 나는 날마다 새벽QT시간에 오늘의 말씀을 붙잡았고 밤QT시간에 하루를 돌아보며 느낀 점을 글로 남겼다. QT하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 큰 은혜를 받았고 거기서 묵상하는 말씀들도 하나하나 실천해나갔다. 열왕기상, 열왕기하를 6개월 정도 QT하며 나의 바알, 나의 아세라는 없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산당을 찾아내서 제거하였다. 처음에는 큰 우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복음보다 더 좋아하는 것들, 가족, 친구, 시간, 내 계획 등까지 매일 찾아내서 버리기 시작했다. 날마다 성경읽기 한 시간, 성경쓰기 한 시간, QT 한 시간 이상이 내 기본패턴이었다.

 

 스스로 룰을 정해서 이것 못 하면 공부도 못하고, 심지어 숙제조차 못하게끔 했다. 다른 일을 하려면 적어도 이것을 다 하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다른 일은 잘 못했다. 공부는커녕 숙제도 잘 못해서 다른 과목시간에 수업 안 듣고 숙제를 배끼기 일쑤였고, 그것도 못해서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다.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교회 부흥회도 빠지지 않고 다 갔다. 방학 아닐 때는 새벽집회하고 저녁집회만 갔다. 한 번은 강사목사님께서 자기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회개하고, 사람 앞에도 사과할 것 사과하고, 변상할 것 변상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심령이 된다고 하시면서 자기는 기도하다 보니 어릴 때 지은 죄까지도 하나님이 다 떠오르게 하셨다고 하셨다. 

 

나도 최대한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모든 죄를 다 회개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내 잘못을 이야기하고 사과했다. 가족, 친구들. 내가 잘못 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불쑥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 꺼내기가 쑥스러워서 하기가 힘들었다. 계속 못 하다가 이것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데 그래도 못 하느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억지로 했다. 부모님은 감동을 받으셨고, 친구들은 미쳤냐고 했다. 나는 하나님 말씀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뜨겁게 전도도 했다. 교회 전도사님께서 한 사람이 전도에 미치면 학원복음화 가능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는 내가 미친 사람 되겠다고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열심히 전도지도 나눠주고, 학교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려고 하고, 친구들을 졸라서 교회도 끌고 와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전도가 안 되더라. 1년도 안 돼 나는 대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교회에서도 유명해져있었다. 그러다가 우리학교 기독교동아리 장이 되면서 선교단체 활동도 시작했다. 거기는 교회와는 또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거기에는 억지로 와있는 사람이 없었다. 기도를 해도 뜨거움이 달랐고, 말씀도 깊이가 달랐다. 나같은 오타쿠들이 모인 곳이었다. 거기서도 똑같은 열심으로 한 주도 목요찬양과 제자훈련을 빠지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는 구조였는데 나는 학교와 싸움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듣지 않고 참석했다, 신앙의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대단한 신앙생활 해야겠다 한 게 아닌데 어느 순간 보니 나는 어마어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QT와 성경읽기, 성경쓰기, 그리고 매일 밤 교회 가서 기도하기, 교회 공예배와 선교단체 훈련을 단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성경만 읽다 왔고, 쉬는 시간에 기도했고, 선교단체활동을 하며 학생들을 모아서 매일 기도회를 진행했다. 1주일에 내가 인도하는 기도회만 학교와 교회를 합치면 10개~15개 정도였다.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배운대로 사회에서도 빛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모습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비적인 것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과 약속한 따로 떼놓은 기도시간이 많다 보니 수영로교회 지하기도실에 박혀서 하나님께 질문하고 그 앞에서 생각하면서라도 시간을 보냈다. 새벽마다 QT로 말씀을 붙잡았고 밤에는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나를 회개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변화가 안 되더라. 스스로를 자책하며 회개하는데 어제 한 내용과 비슷하더라. 이런 내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 두 번 다시 이런 죄 안 짓겠다고 만약에 내가 또 이런 죄를 지으면 그때는 하루 금식하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 금식을 하다 보니 나는 이미 고1, 2, 2년간 금식일수가 50일을 넘어버리더라. 그렇게 자책을 하고 땅을 치고 회개를 하는데도 내가 잘 안 바뀌더라. 마음 속에 일어나는 분노가 다스려지지도 않더라. 어떤 때는 은혜 받은 게 너무 좋아서 성적인 충동도 다스려졌는데 그게 계속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기도의 패턴이 있었고 나중에는 하루 10회 정시기도를 꾸준히 지속했다.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응답을 기대했는데 응답이 안 오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매일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게 왜 그런지 하나님께 물었다. 그런데 모르겠더라. 내 욕심 아니었는데 왜 응답 안 하셨냐고 묻는데 이해가 안 되더라. 또, 열심히 전도했는데 전도가 안 됐다. 선교단체 전도학교도 다니면서 부산역에서 노방전도도 하고 했는데 나를 통해 예수 믿는 사람은 학교에서도, 노방전도에서도 생겨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이 좋을 때도 있지만 이런 생활을 유지하자니 어떤 때는 피곤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언은 못하면서 기도시간은 많이 잡아놔서 기도시간이 널널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질문도 하고 생각도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생활과 내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알면 고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특별한 깨달음은 없었다. 주변에 나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었다. 나처럼 신앙생활하거나 비슷한 사람도 잘 없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외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방학 때 수련회를 10개 정도 갔다. 타 교단, 선교단체 큰 대회는 다 갔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진작에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고, 답을 찾고 싶었다. 또 다른 방학 때는 큰 교회 탐방을 갔다. 순복음교회, 충현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남서울교회, 명성교회, 할렐루야기도원 등등 한국교회 유명한 곳은 다 찾아가봤다. 대단한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내 문제를 찾고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그 분들의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했다. 그리고 그곳의 좋은 시스템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보고 깨달으면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더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됐다. 당시에는 큰 고민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각 교회, 각 선교단체의 좋은 점을 배워서 신앙생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경배와 찬양, CCC, 예수전도단 큰 집회도 갔다. 또, 내가 수영로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부흥회 때 전국의 유명 목사님들을 모셔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듣는 것은 다 하려고 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보다 신앙생활을 더 할 수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창세 이후 인간들 중에 나와 같은 환경 속에서 나이상으로 하나님 바라본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은 사도 바울이 살아나서 나와 같은 시대에 나와 같은 나이로 학교생활 한다면 나보다 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성경에 있는 응답이 오지 않을까. 내가 밤마다 교회에 들러서 고민하며 기도했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부산에서 다락 방 전도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전도는 잘 안 돼서 그렇지 나의 엄청난 관심분야였다. 나는 전도자로 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전도가 돼야 되는데 안 돼서 고민이었다. 당시에도 이단논란은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성경을 잘 안다 생각했고 이단들도 많이 만나봐서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단인지 아닌지는 들어보면 아는 것이고 타 단체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필요한 전도의 부분만 취해서 나오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전도를 배워 전도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보기 위해 다락 방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개 나가던 것에서 하나 늘린 것뿐이었다.

 

 전도를 배우기 위해 갔는데 전도 이전에 저런 메시지를 들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 그리스도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내 신앙생활은 위에 적어놓았지만 하나님께 은혜는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고, 그런데 뭘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몰라서 다 잘하려고 했다. 내가 노력해서 최고의 신앙생활을 살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려 했다. 그런데 한계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내 신앙생활의 고민이 해소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것에 답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리스도를 부족하게 알고 누리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를 배워서 여러 가지를 잘 하려고 하던 것에서 이 그리스도 하나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락 방을 한 후로 더 이상 이런 저런 단체를 기웃거리며 배우지 않게 됐다. 나의 문제는 그리스도 부족이고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답이 있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이지는 않을 것 같다. 나의 특이한 신앙생활도 어느 정도는 당시 한국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당시에 많은 사명자들과 목회자들이 다락 방에 열광했던 이유는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 은혜는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왜 안 되는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가 다라고 하는 목회자가 나오니까 거기에 빨려들어간 것 같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말인가.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성경 많이 알아야 되는 것 아니고, 나처럼 열심히 살아야 되는 것 아니고, 방언해야 되는 것 아니고, 그리스도 알면 되어진다. 그 이야기가 설사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설사 사기꾼이라도 믿어보고 싶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그 꿈을 꾸고 싶었다. 거기에 취해서 빨려들어갔던 것 같다. 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만약에 다시 한 번 그 상황에 놓이더라도 나는 또 저 메시지에 빨려들어갔을 것 같다.

 

 실제 다락 방에 와서 나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방황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그 이상한 사람들과 상관없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리스도 속에서, 내가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화되어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 그 전도 못하던 내가 나를 통해 예수님 영접한 사람이 진작에 천 명도 넘었고 지금 복음 전하는 것에 아무 부담이 없다. 예전과 같은 열정은 사라지고 없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되는지에 대한 답답함은 없어졌다. 그래서 저런 중심을 가지고 저런 메시지를 들려주신 류 광수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있다.

 

 지금 다락 방이 조금 어렵다고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목회자들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니 다락 방도 일반적인 교회와 같이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도 좀 많이 하고, 회개도 강조하고, 행위도 강조해야 된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건방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의 끝점까지 가봤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나는 공휴일에는 아침 먹고 교회를 가서 기도했다. 하루 종일 기도하고 싶은데 방언을 못하니까 맨정신에 기도해야 됐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폈다. 대충 내용은 다 아니 발췌독을 하면서 그 부분의 말씀대로 못 산 것을 회개했다. 또, 중요한 사람의 기도가 있으면 따라 기도했다. 

 

점심시간에는 집에 가서 밥 먹고 와서 다시 교회 기도실에 박혀서 기도했다. 저녁시간에 밥 먹고 와서 다시 교회 기도실에 박혀서 기도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어떤 공휴일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을 가지고 갔다. 앞에서부터 넘기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렇고, 사람은 이래야 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을 읽으면서 회개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개했다. 에어컨도 없는 지하기도실에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갔고 거기서 몇 시간씩 기도했다. 나는 수영로교회 월요산상기도회를 고1, 2, 2년 동안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시험 전날도, 아플 때도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저녁8시에 가서 돌아오면 새벽1시였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바위 뒤에서 바람을 피해가며 소리 지르며 기도했다. 마음은 시원했지만 변화는 안 됐던 것 같다. 엘리야 따라한다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기도해봤고, 크게 기도해야 되는 줄 알고 배가 아파 뒹굴만큼 소리쳐 기도도 해봤다. 특이하고 이상한 행동한 것을 적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효과가 있었다면 나는 성인 비슷한 사람이 돼있어야 됐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람이 뻔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늘 회개하고, 금식하고, 말씀대로 못 사니까 약간 주눅 들어있었던 것이 내 캐릭터인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착하지는 못하더라도 착하려고 노력하고. 나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눈물 흘리며 기도해도 마음 근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는데 그리스도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 자체가 변화되어지는 일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목회자가 돼서 말씀을 전하다 보니 그리스도를 강조하려고 한다. 회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무엇이 죄인지는 사실 스스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알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이 변화되어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변화는 성령으로만 되어지고 그 성령이 역사하시는 이름이 그리스도다. 그래서 설교 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죄와 행위, 윤리의 문제에 대해 설교 때 언급할 수도 있지만 강조할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교회 다니다가 안 다니는 사람이 교회에서 계속 죄에 대해서 말하고 죄 짓지 말라고 하는데 그냥 교회 안 다니고 착하게 살면 되지 않냐고 하더라. 그리고 성경에 중요한 언약들이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언약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고, 땅 끝까지 증인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를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과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이 있으며 연약함도 있다. 이것이 잘못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단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설교하면 사람들이 행위를 더 조심해서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행위를 잘 하게 하기 위해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다른 내용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끄러운 부분이고 넘어서야 되는 부분이다. 복음을 말하는데 삶이 복음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행위를 강조하지 않고 복음을 강조하는데 복음이 행위로 드러나는 믿음의 사람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기다리고 소망할 뿐이다.

 

 최근 다락 방의 문제에는 이런 문제 뿐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들도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단을 가를만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여기에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고쳐서 새롭게 가라고 하는 좋은 계획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사람 앞에 사과할 것이 있다면 사과하고, 변상할 것이 있다면 변상하고, 구조적으로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은 갱신하고 다시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완하고 가면 될 일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허하게 문제를 받아들이고 고쳐나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사용하시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냥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이 말하는 사람이 계속 있어줬으면 하고, 그것을 사실로 보여주는 사람이 일어났으면 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이 말이 다시 들어도 또 좋다. 이것이 내가 다락 방에 있는 이유다. 여러 문제들이 잘 수습되고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다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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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울대님의 댓글

서울대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는데 그리스도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 자체가 변화되어지는 일이 생긴 것 같다."

지도자를 비롯한 수뇌부 목사들이 그렇게 그리스도에 집중했는데 마음 자체가 변화되어지지 않고 타락의 길로 가는 건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수습될 문제들이 아니고 해체가 답입니다.

서울대님의 댓글

서울대

"그래서 나도 목회자가 돼서 말씀을 전하다 보니 그리스도를 강조하려고 한다. 회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무엇이 죄인지는 사실 스스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알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이 변화되어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변화는 성령으로만 되어지고 그 성령이 역사하시는 이름이 그리스도다. 그래서 설교 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죄와 행위, 윤리의 문제에 대해 설교 때 언급할 수도 있지만 강조할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바울의 로마서와 에베소서 같은 책들은 어떻게 설명하실건데요?
서신의 반이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이 행할 내용들,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요.

이것이 RTS 출신 목회자 수준인가요? 더 나은 사람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