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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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이원론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로 보는 관점이며, 또 영과 육의 구도, 선과 악의 구도로 보는 두 가지의 근원적인 관점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악, 사고, 불행, 질병, 심지어 가난까지 모두 사탄과 귀신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이원론에 의하면 죄도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사탄때문이라는 주장이 되므로, 죄관 자체도 이상해지고 그것은 곧 구원론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로 그들이 주장하는 원죄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마귀때문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곧 구원관으로 직접 연결되어진다.
이와 같은 이원론은 원래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며, 초대교회의 헬라 철학, 노스틱주의, 영지주의, 마니교와 같은 이방이단들의 주장이었다.
- 이원론: 노스틱주의 이원론은 조로아스타 종교의 영향하에 형상된 시리아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이원론은 신화적인 것이었으며 두가지의 상반되는 원리 - 즉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스틱주의에 있어서는 이러한 빛과 어둠의 신화적 이원론이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되었다. (기독교교리사, 서남동, 대한기독교서회, 123쪽)
- 마니교의 이원적 기초는 이원론이었다. 마니교는 선과 악이 영원 전부터 동등한 세력으로 공존해오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빛과 어두움의 세력이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 태초에는 선과 악의 두세 력이 완전히 분리된 두 왕국 안에 각각 존재하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형성, 성광문화사, 김명학, 146쪽)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베뢰아, ㄷㄹㅂ, 구원파, 지방교회, 인터콥, 신사도운동, 일부 극단적세대주의와 같은 이단적인 단체인데, 그러나 적지 않은 정통교회의 교회와 목사들 외에 일부 선교단체와 양육프로그램들이 이러한 주장이 가르쳐지고 있었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제이다. 만약 이러한 이원론적인 주장이 성경적인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예수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악, 사고, 불행, 질병을 포함하여 가난도 없어야만 한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질병에 걸리고, 가난하고, 사고를 당한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거짓 신자로 간주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원론의 시각에서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쫒아내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베뢰아나 ㄷㄹㅂ, 인터콥, 신사도운동, 극단적세대주의와 같은 단체의 경우는 예수가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온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특히 신사도운동은 악한 영을 자세하게 분류하여 ‘가난의 영’ 혹은 ‘음란의 영’등과 같은 용어로 구별하며 부르는데, 그러한 용어는 곧 가난과 음란의 죄도 악한 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특히 신사도운동과 인터콥등 선교단체들은 지역귀신에 의한 영적도해를 주장하며, 지역마다 존재하는 지역신을 대적기도와 선포기도, 땅밟기로 쫒아내야 한다는 것을 선교와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자들은 그러한 사상을 신귀신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원론에 대해서 (1) 하나님과 사탄의 이원론, (2) 선과 악의 이원론 (3) 영(영혼)과 육의 이원론 (4) 이원론적인 번영신학의 오류라는 네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자세하게 살펴보자.
1) 하나님과 사탄의 이원론
➀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만물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으며,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고 만물의 근원이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사도행전 17:24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천사를 창조하셨는데, 그 천사가 스스로 범죄하고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고, 그들을 따르는 일련의 무리들이 악한 영, 즉 귀신이라고 한다. 사단(사타나스)과 마귀(디아볼로스)는 같은 동의어로서 타락한 천사로 보며, 귀신은 사단(마귀)의 무리들, 즉 졸개나 부하들로 본다. 본래 사단이란 ‘대적자’란 의미를 갖는데, 즉 하늘로부터 하나님께 범죄한 한 무리의 타락한 천사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대장이 사단(마귀)이며,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을 귀신으로 보며, 그 성경적인 근거는 유 1:6과 벧후 2:4등으로 본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앙겔로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앙겔로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성경은 사탄의 타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지만, 정통신학에서는 하나님께 범죄한 한 집단의 천사들이 있었는데, 사탄(마귀)를 포함하는 일부 집단은 심판 때까지 무저갱에 갇혀 있으며, 그러나 일부는 아직 제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계 20:1-3)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에 이러한 사단과 귀신들은 잠깐 풀려나서, 최후의 전쟁을 하게 되지만 결국 모두 영영한 불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구약에서도 이러한 언급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천사들이 천상회의를 갖는데, 그 중에 사단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사단이 천사였다는 것은 분명하며, 성경상으로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 1:6, 2:1)
욥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탄은 사람을 미혹하는 존재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으며, 즉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욥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욥 2:6) 곧 사탄이 자의적으로 욥의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➁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고 주관하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 일일이 허락하신다(마 10:29)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말하며, 또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라고 기록하고 있다.
혹간은 사탄이 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사탄이 통치권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았다고 주장한다. 비록 성경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통치권을 빼앗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은 찾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할 것을 위임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6-28)
섭리 (providence)를 뜻하는 용어는 “통치와 보존과 협력”의 세가지 요소를 갖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통치권과 주권을 위임하시고 지금은 세상 일을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대한 통치적인 주권을 갖고 계시며 보존하고 유지하시며 협력하신다. 섭리를 정의한다면 “창조주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보존하시며 세계에서 생성하는 모든 일에 적용하시며, 또한 만물을 그것들의 정해진 목적으로 지도하시는 신적세력의 지속된 수행”(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권, 410쪽)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 9:6)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1)
단지 이 세상을 다스리라는 대리적인 사역을 사람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특히 통치권과 주권을 사탄에게 위임하신 적이 없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을 비판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섭리적인 역사하심을 말씀하셨다. 심지어 자유의지를 갖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의 행동과 계획도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요 34:2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➂ 하나님은 때로 악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과연 하나님과 사탄은 상호 대결구도로 존재하는가? 성경은 때로는 하나님이 악한 영을 도구로서 사용하신다는 구절이 있다. 즉 하나님과 사탄을 대결구도로 보는 사람들은 성경구절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삿 9:23)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왕상 22:20-23)
하나님은 때로 악한 영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언제나 하나님이 악한 영의 행위에 대한 원인적 제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있을 수 없으며, 악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우리는 언제나 중요한 결론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며, 그분은 불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여야만 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롬 9: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누군가가 시험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욕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 욕심이 죄를 낳고, 그 죄가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2-15)
하나님은 스스로 시험에 빠질만한 사람을 시험하실 뿐이며,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시험을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으나 그가 범죄하고 타락하는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➃ 원죄 : 원죄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탄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 때문이다,
창세기 3장12절-13절에서 아담은 여자가 죄가 있음을 고하고, 여자는 뱀에게 죄가 있음을 고하지만, 하나님은 뱀과 남자와 여자를 모두 벌하신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추방하셨다. 그것은 뱀에게만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즉 뱀은 사람을 미혹하였지만,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롬 5장12절은 죄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1-22)
호세아서는 아담의 죄를 언약이라고 언급한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7)
성경은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을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인간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가 온 것이며, 사탄은 천사 스스로가 범죄한 것을 뜻한다.
뱀이 하와를 미혹한 사건만이 죄가 아니라, 그 사건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떠나는 부패와 오염이 죄라고 성경은 말한다. 원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은 특정한 결과가 아니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곧 죄가 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➄ 원시복음은 이원론적 관점이 아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
위 성경구절은 원시복음이라고 불린다. 궁극적으로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가 사탄의 후손으로부터 승리를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그 사건의 성취는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으며, 또 종말적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특히 ㄷㄹㅂ방은 위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적인 이원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를 의미하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발꿈치(아케브: 발끝, 뒷꿈치)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사소한 상처를 입게 된다는 의미이며, 머리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패배를 뜻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하게 함으로서 승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사망에서 부활하심으로서 사단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주었다. 역시 궁극적으로도 사탄은 영영히 불못에 던지우게 될 것이다.
➅ 예수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는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과연 예수가 마귀를 멸하려고 오셨는가? 특히 베뢰아나 ㄷㄹㅂ방같은 이원론을 주장하는 곳에서 이와 같이 가르치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마귀를 멸하면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가? 이들은 이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합법적으로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이상한 주장을 한다.
- 어떤 사람은 '마귀가 도전했을 때 당장 하나님이 멸하시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묵인했느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반역하는 천사를 인정해서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합법으로 처리하시려고 한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66쪽)
-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시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대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거를 잡아 형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해서 그를 상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여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므로 합법적으로 처리하신다. (베뢰아원강, 706쪽)
마귀가 하나님께 타락하고 범죄하였을 때에 마귀를 멸하면 합법적이 아니라 불법이 되는가? 도대체 무엇이 합법적인가? 베뢰아 출신들의 주장을 비교하여도 동일한 내용이 나타난다.
- 하나님의 아들의 목적은 이 놈(마귀)을 멸해 버리는 게 목적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을 반역한 놈을 합법적으로 멸한다 이 말이오. 분명히 이해 돼야 해요. 어디 가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가 구원이라는 거요. 모두 구원이 아니라는 거요. 그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도 못 믿는다는 거요. 이 사건을 믿고 분명히 나의 소유로 삼아야 구원이라는 거요. 오늘날 구원이 완성되지 못한 자가 이 소리 듣고 받아들이면 그냥 구원이 완성되는 거요. 간단한 거요(윤석전, 교회와 신앙, 2000년 3월)
- 주님은 사탄을 정죄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범죄한 사탄을 영원히 저주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그것을 행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저주받아야 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대적하여 범죄한 천사이고 저주받아야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을 고소하였고,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사탄을 정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정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32쪽)
(ㄷㄹㅂ, ㄹㄱㅅ, 영접의 열두가지 의미)
- 3. 영접은 기도응답의 모든 법적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예수 영접입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있음을 깨닫고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조건을 다 소유했습니다. 실제로 뭐냐하면 법적인 조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법대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도 법대로 승리하셨습니다. 법대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창세기2:17의 법대로... 그러기 때문에 영접 이 말을 예사로 생각하시면 안돼요. 영접,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버린 것입니다. 창3:15을 성취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해결을 해 버렸습니다. 예수 영접하는 자는 기도의 조건을 모두 소유한 것입니다. 나가서 복음 전하는데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건져내는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소유했습니다.
(ㄷㄹㅂ, ㄹㄱㅅ, 복음편지 4과 왜 우리에게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중대한 말이 나왔다.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마귀와 마귀의 일 두가지로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세력을 멸하려 오셨고,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성경을 보면 ‘마귀’를 멸하려하심이 아니라 ‘마귀의 일’(devil's work)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마귀의 일’은 무엇일까? 마귀의 일은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즉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는 것은 마귀를 멸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셨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언제나 죄를 짓는 자는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사실 죄는 처음부터 악마의 짓입니다. 악마가 저질러놓은 일을 파멸시키려고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나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KJV] He that committeth sin is of the devil; for the devil sinneth from the beginning. For this purpose the Son of God was manifested, that he might destroy the works of the devil.
[NIV] H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because the devil has been sinning from the beginning. The reason the Son of God appeared was to destroy the devil's work.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는 ‘죄’란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뜻한다. 죄란 ‘하나님과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것’(It is directed against God)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다시 말하여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마귀의 일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며, 즉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막음으로서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낸 이유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1)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조차 잘못 가르치는 곳이 과연 정상적인 기독교의 교회인가? 시작부터 잘못된 주장을 가르치는 곳은 결코 정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베뢰아와 베뢰아에 영향을 받은 목사들은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된다고 가르치는데, 즉 하나님과 사단이 서로 인간의 육체를 빼앗기 위하여 들어왔다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베뢰아는 마귀를 축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ㄷㄹㅂ방에서도 조금 다르게 표현하지만 예수를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마귀를 쫓아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만약 마귀를 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를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가난한 사람도 없어야 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도 없어야만 하고, 불행이나 사고도 없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주장은 허위가 되어질 것이다.
(2) 선과 악의 이원론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또한 세상은 선과 악의 두 대결구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은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에 악이 함께 포함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악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또한 악은 무조건 죄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질병, 홍수나 지진은 인간의 측면에서 볼 때에 악이 되겠지만 죄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전쟁,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은 죄이며, 또한 악이 된다. 우리는 전자를 ‘자연적 악’이라고 부르며, 후자는 ‘도덕적 악’이라고 부르는데, 성경에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3장1-4절에서 갈릴리사람들의 죽음과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초래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즉 언제나 죄가 악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지각의 물질적인 변동으로 인한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적인 사건이 모두 사람의 죄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사도들의 경우를 보자. 사도들은 모두 고난과 순교를 당하였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모두 마귀를 쫓지 못하거나, 마귀에게 사로 잡혀서 저주를 받아 이러한 고난과 재앙을 당하였을까? 혹은 사도들의 믿음이 잘못되어 저주와 심판을 받았을까?
이러한 이원론은 큰 오류에 부딪히게 된다.
만약 이러한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마귀를 쫓아냄과 동시에 모든 저주와 모든 불행, 사고와 악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즉 예수가 전하신 십자가 복음의 본질적인 내용은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지금도 귀신축사를 하는 이단들과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귀신축사를 하면 모든 질병이 고침을 받고, 사업이 번성된다고 주장한다. 혈통유전설과 가계저주론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다. 결국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이 된다.
예를 들면,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다. 스데반의 입장에서는 불행과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스데반 사건으로 하여금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여러 지역으로 전파하였다고 말한다. 물론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일이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 8:1-4)
우리 삶에서 실제로 예를 들어 보자.
기독교인들은 항상 건강하고 축복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까? 기독교인들은 사고나 재앙과 불행을 당하지 않을까? 타종교인이나 불신자들은 모두 질병에 시달리고 재앙과 저주를 받고 가난하게 살아갈까? 고난과 불행은 모두 마귀 때문이고, 축복과 행복은 모두 하나님 때문이라는 등식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며, 사람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때로는 악을 그대로 묵인하고 때로는 유기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근거로 한다. 공의는 저울추와 같아서 악을 심판하고 선을 구원하시는 분명한 기준이 바로 공의(Justice)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악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시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혹의 역사를 보내셨으므로 그 멸망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은 그들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8)
(3) 영과 육의 이원론
➀ 육체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구성요소에 따른 신학적인 견해에는 이분법과 삼분법이 있다. 물론 필자는 교단에 따라 다른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하여야만 하는 이원론이라는 주장은 이분법이든 삼분법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서 영(또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견해를 뜻한다. 즉 살아있는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사람을 영과 육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켜,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육에는 사탄이 거한다고 가르치는 주장이다. 특히 삼분법을 이원론과 장소적으로 분리시키는 지방교회는 영에는 하나님이, 육에는 사탄이, 혼에는 사람의 인격이 거한다고 주장을 한다.
지방교회, 베뢰아, 구원파, ㄷㄹㅂ방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방교회의 주장)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 사단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우리 몸으로부터 우리 혼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이 사단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역사한다. 주님은 반대방향으로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역사하신다. 어느날 주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이요 축인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위트니스 리, 왕국, 217쪽)
(베뢰아의 주장)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구원파의 주장)
(1) 영혼의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죄성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는 이유: 사단은 공중권세를 가진 자이며 인간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이 범하는 죄의 유형 첫째는 부지 중에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에 아직 죄성 가운데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죄입니다 (생명의말씀 선교회 홈페이지, 이요한, 대한예수교복음침례회)
(ㄷㄹㅂ의 주장)
(1)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2)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3)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 16:16~19) -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복음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 하나님이 우리 속에 아예 오신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육이고, 우리의 마음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 (ㄹㄱㅅ, 현장복음, 2과 - 새로운 생명 (3) 성령의 내주란 무엇인가?).
성경은 육과 영(또는 영혼)을 구별하는 구절이 분명히 있다. 육을 영과 다른 고깃덩어리의 부분을 지칭한다.
"육체(사르크스)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8)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사르크스)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17:16)
‘육체’를 뜻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단어에는 ‘바사르’가 있는데, 그 단어는 사람이나 동물의 근육조직과 고기 덩어리를 말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전인적인 사람 혹은 총체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이 히브리어 ‘바사르’라는 단어는 약 1/3을 동물로 사용되었고, 2/3는 사람에게 사용되었는데, 단 한번도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된 적은 없다. 다시 말하여 사람과 짐승이 육체적인 어떤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육은 하나님과 반대가 된다는 의미, 즉 하나님은 영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바사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시145:21)
성경의 기자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라고 하였던 것은, 영과 대조되는 고깃덩어리만이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말하며 모든 인류가 그 육체를 갖고 있다는 함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신약에서 ‘육’은 헬라어 ‘사르크스"라는 단어이며, 히브리어 ‘바사르’는 70인역에서 ‘사르크스’로 번역되었으므로 호환성이 있다. 물론 ‘사르크스’라는 단어도 순전히 영과 대조되는 근육조직과 신체적인 기관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만, 히브리어 ‘바사르’와 같이 대부분 육체는 사람 자체를 뜻한다.
즉 히브리어 ‘바사르’와 헬라어 ‘사르크스’는 대부분의 경우,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인간자체를 표현할 때에 사용되어진다. 예를 들면 우리 한글에서도 ‘육체’라는 단어는 ‘영(영혼)’과 대조되어지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인간 자체’를 말할 수도 있다. 또한 한글에서도 ‘육체적’이라는 단어는 전인적인 인간 자체의 본능과 욕망, 혹은 죄악을 상징한다. 당연히 영혼을 배제한 고깃덩어리의 육체 자체가 욕망과 죄악을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바울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였으며, ‘영을 쫓는 자’는 "성령을 쫓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총체적인 인간‘을 말함으로서 ’성령 하나님‘과 대조되는 경우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육신이 죄로서 거한다는 표현은 그 육신이 곧 성령을 거스리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 성경본문과 같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즉 본문은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영이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인간과 ‘영’이신 성령하나님이 구별되고 대조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히브리어 ‘루아흐’ 혹은 헬라어 ‘프뉴마’로 표현되는 ‘영’이란 때로는 인간의 영, 즉 인간의 내적인 생명력으로서 신적 실재와 접촉하는 직접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을 가르킨다. 인간의 영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태어난 후에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앞서 말하였듯이, 바울이 말한 ‘육신을 쫓는 소욕’의 개념은 사람을 육과 영으로 분리하고 구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쫓는 삶’과 반대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여, 바울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은 영과 육신을 분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표현이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이 표현한 영에 있는 자는 거듭난 사람을 뜻하며, 육신에 있는 자는 성령이 없는 거듭나지 못한 자를 뜻한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즉 바울이 말한 ‘육체의 소욕’이란 영혼을 제외한 고깃덩어리만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반대되는 총체적인 인간의 소욕을 말하는 것이 명백하다. 위 성경본문 요한복음 3:6-7은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어 거듭난다는 것은 없었던 영을 갖게 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그 영을 강퍅하게 하셨다"(신 2:30)는 것처럼, 성경은 불신자에게는 영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 그 ‘영’이 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영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음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과 단절된 영은 죽은 것이며, 그는 곧 ‘육신에 있는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을 때에,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도 함께 포함되어졌다. 바울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엡2:1)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롬6:11)고 말하였을 때에, 영과 육을 구별하고 분리하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영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5:17)
물론 인간은 죽어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서 썩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되며,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의 부활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으며,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대부분 영과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간을 말하거나 혹은 개념상으로 영과 대조되는 육체로서의 의미를 표현한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살아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경우가 언급되지 않는다. 야고보서 2장26절과 같이, "영혼없는 몸은 사실상 죽은 시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영성개발원이니 영성신학이니 하는 곳에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헬라철학적인 이원론 사상일 뿐이다.
더욱이 지방교회, 베뢰아같은 곳에서는 죄가 육체에 거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생각하여 보아야만 한다. 죄는 그 자리를 육체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영혼(혹은 영)이 배제된 육체가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영혼이 없는 육체는 시체일 뿐이다. 또한 죄란 물질명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자들과 영지주의, 마니교등은 이 세상의 근원을 영(선)과 물질(악)의 두가지로 구별하려고 하며, 모든 창조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신의 두 세력으로 양분하려고 한다. 즉 세상의 악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온다고 간주하며, 물질은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초래된 것으로 봄으로서, 육체는 근원부터 악하고 죄가 거하는 좌소이며 악신이 거하는 장소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한 헬라철학은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의 육체만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적인 인격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육은 그 자체만으로 악하거나 악의 원천이 되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에 죄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며, 인간자체가 죄인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그 능력에 있어서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육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을 뜻하였고, 영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성경은 선악 간의 문제에서 육체와 영혼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육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영도 더러운 것이 되며 전인적인 인간이 곧 더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육체에 사탄이 거하며, 육체에 죄가 있다고 하거나, 영은 죄가 없으며, 영에 하나님이 거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1)
또한 성경은 육체에 사단이 거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육체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도 혼도 죄를 짓는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soul)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spirit)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7-18)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네페쉬)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4)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spirit)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마귀가 우리의 육체에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생각을 넣는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마찬가지로 육체만이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육체도 영과 함께 전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사람을 육체와 영(영혼)으로 구별하여 죄는 오직 육체에 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성경은 그렇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시63:1)
➁ 죄는 전인적인 기관으로서 마음에 있다.
성경적인 표현을 보자면, 죄는 마음에 있다. 마음은 영을 표현하는 기관이며 마음 안에 영이 있으며, 또한 몸이 있으므로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육체와 영혼의 전인적인 기관으로서 존재한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heart)을 주고 그 속에 새 신(spirit)을 주며, 그 몸(flesh)에서 굳은 마음(heart)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heart)을 주어서"(겔11:19)
성경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인간은 영(영혼)이 배제된 육체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히: 레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히: 레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마음(헬: 칼디아)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9)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헬: 칼디아)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헬: 칼디아 포네로스)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3:12)
즉 성경에서 ‘육체의’ 라는 말은 ‘죄많은’ 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육체 자체에 죄가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육신을 가진 인간 자체가 연약함으로 유혹의 목표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헬라인 이원론자들과 같이 죄가 육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그 영향과 활동이 지정의에 미쳐 전인적으로 죄가 파급되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죄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보다 확실한 성경적인 증거가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28-30)
죄는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른 눈과 오른 손이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heart)에 음욕을 갖는 것이 죄이기 때문이다, 성경본문은 실제로 오른 눈을 빼거나 오른 손을 자른다고 하여 죄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으로 죄를 지음으로 지옥에 간다는 강조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➂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마귀가 들어올 수 있을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물론 우리는 악한 영과 대적하여야 하며,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그러나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는 마귀나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고 본다. 만약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을 귀신이 들어와서 그를 사로 잡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작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이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도하고 보호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성경적인 근거로 보아서는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견해가 옳다고 보아야 한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3)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너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또한 아래 본문은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내용은 아니지만,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과 마귀를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14-18)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신갑주라고 말하며, 능히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는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말한다. 성령 안에 거하는 우리들은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3-17)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 1:28)
4) 이원론적인 번영신학의 오류
이러한 이원론에 의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이 내주하고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여 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한다. 즉 마귀가 모든 죄의 원인이 되었고, 악의 원인이었으며, 불행과 질병과 사고와 가난의 원인이었으므로,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면 이러한 문제가 모두 해결이 되어야만 이러한 이원론자들의 주장이 진리라는 것이 증거될 수 있다.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총괄적으로 ‘영적전쟁’이라고 부르며, 귀신축사, 대적기도, 선포기도, 땅밟기등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특히 신사도운동은 가난의 영을 쫒아냄으로서 부의 이동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영적도해의 땅밟기기도와 대적기도, 선포기도로서 하나님나라를 지상에서 인간 스스로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많은 선교단체들이 가계저주론을 가르치고, 죄를 종이에 적어 불태우는 무속적인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는 "죄"란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뜻한다
죄란 “하나님과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것”(It is directed against God)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죄”라는 단어 중에서 중요한 히브리어 단어는 “하타”이며, 헬라어로는 “하말티아”로서, “표적을 빗나가다”라는 뜻이다. 즉 죄는 단순히 사회의 도덕적인 기준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말하며, 그 기준에 부족한 상태나 그것을 어기는 자체를 말하며, 즉 하나님의 뜻을 역행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진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다시 말하여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마귀의 일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이며 즉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낸 이유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눅 4:43)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부터 잘못 가르치는 곳은 정상적인 기독교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러한 이원론을 주장하는 베뢰아나 지방교회, ㄷㄹㅂ, 구원파들은 모두 양태론자로서, 성부하나님 자신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온 것이 예수라고 가르친다.
이들은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된다고 가르치는데, 즉 하나님과 사단이 서로 인간의 육체를 빼앗기 위하여 들어왔다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베뢰아는 마귀를 축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ㄷㄹㅂ방은 마귀의 일을 멸한다는 성경구절을 알면서도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으로 해석을 고의적으로 하고 있다. 요한일서가 말하는 “마귀의 일”은 죄에 대한 문제이지, 창3장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다.
(ㄷㄹㅂ, 복음편지 4과, 왜 우리에게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중대한 말이 나왔다.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마귀와 마귀의 일 두 가지로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세력을 멸하려 오셨고,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인터콥의 최바울의 백투예루살렘도 이러한 베뢰아 귀신론과 신사도운동의 영적도해사상이 나타나는데, 최바울은 자신의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잘못을 수정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용어를 BTJ로 바꾼 것이라고 변명을 하고 있다. 즉 그는 자신의 교리적인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인류역사는 에덴의 영적전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어 에덴에 두시자 사탄이 간교한 뱀의 육체를 입고 침입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후에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인간사회에 진입하십니다. 그리고 영적전쟁을 본격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역사는 처음부터 영적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최바울, 왕의 군대, 144쪽)
-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역사는 인간 개개인을 구원하셨지만, 하나님나라의 완성은 인간 개개인이 구원 받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 이상의 하나님의 사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역사 이후에도 하나님의 세계경영은 자구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계속되는 것입니다.(최바울, 왕의 군대, 118쪽)
또한 ㄷㄹㅂ방의 책과 양육교재,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책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요일 3:8의 “예수가 오신 목적이 바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상에 근거를 둔 것이다. 즉 현재는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였던 간극론의 연장전 선상에 있다. 세상을 하나님과 마귀의 대결구도로 보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되며, 이것이 곧 구원론이 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첫째 하늘에서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원수를 심판하고 멸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12쪽)
- 인류구원보다는 사단의 정죄가 먼저다. 사단이 정죄되지 않으면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아직 인류가 없을 때 마귀 정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실 것이 작정되었다(베아10,30) (베뢰아원강, 574)
김기동목사는 배멀미, 차멀미와 연탄가스중독도 귀신 때문이며, 임신중독의 헛구역질도 귀신때문이라고 가르치며, 예수가 오신 목적이 사탄을 멸하기 위함이며, 사람은 그것을 예비하기 위한 도구로 창조되었을 뿐이라고 가르친다. 이와같이 예수의 오신 목적을 변질시키는 것은 신사도운동의 피터 와그너도 동일한다.
-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회복하시려고 오셨음을 살펴 보았다. 다시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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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님의 댓글
호산나
- 우리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회복하시려고 오셨음을 살펴 보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인류를 위해 부여하신 통치권을 되찾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다. 에덴동산에서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었던 아담의 권세를 찬탈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은 역사를 되돌리시려는 공격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46쪽)
이러한 이원론의 주장은 마귀를 멸하는 것이 모든 해결방법이 되어진다. 예수를 영접하면 죄와 악이 없어져야만 하고, 가난과 질병과 사고와 불행이 모두 없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다고 하여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스스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ㄷㄹㅂ, 현장복음3과 - 예수의 이름)
▶예수 이름을 믿고 부르기만 하면 사단의 권세가 결박된다.
골1:13절에 우리를 “흑암 권세에서 건져 내셨다”고 하였다.
요일3:8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문제 중의 문제는 사단이다. 여러분의 사업에 문제중 문제는 사단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사단을 찾아가 점치고 하는 것이다.
ㄷㄹㅂ ㄹㄱㅅ목사가 가르치는 양육교재를 보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더욱이 신사도운동에서는 가난도 사탄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또한 전체적인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땅’과 땅위를 운행하고 있는 공중권세는 영적 전투를 심각하게 다루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든다. 어두움의 세력인 사단은 의로운 사회변혁이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사단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다. 사단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번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가난과 비참함은 마귀가 강력하게 추구하는 목표이다.(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9쪽) - 사단이 교회로 하여금 거대한 부의 이동을 수용할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책략 중 하나는 가난의 영을 통하여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236쪽)
더욱이 가난뿐 아니라 병균도 사탄이 아담의 통치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질병 자체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따라서 가난은 병균과 같이 아담의 통치를 찬탈한 산물임이 틀림없다.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가난은 묵인되거나 감소시켜야할 대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된 도시에서 제거해야할 요소이다. 그리고 그 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225쪽)
- 아마도 근본적인 통치명령 안에는 HIV 바이러스 자체를 극복하고 제거하는 것을 포함하여 더 이상 이러한 것이 존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 그 원리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 그 원리를 더 확대하여 이제는 암, 알츠하이머, 당뇨, 심장병, 각종 경화증, 그리고 심지어 감기에까지 그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환자들을 돌보는” 대신 우리는 “질병 자체를 없애버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224쪽)
실제로 피터 와그너는 자신이 대적기도와 선포기도를 통하여 광우병을 없앴다고 주장한다.
- 선포할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을 이루어지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하나님께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명령해야 한다 ...... 예를 들면 나는 광우병이 유행할 때 독일에서 공적인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내게 광우병을 행하여 사도적인 선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500명이 모인 앞에서 그렇게 했고, 바로 그날이 광우병이 보고된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내게 주어진 권세로 그 병이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70-171쪽)
이원론은 한국교회에 심각한 복음의 변질을 가져왔으며,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을 초래하였다. 적지 않은 성도들은 마귀를 쫓아냄으로 나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곧 예수를 영접하는 이유로 알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비록 이단들에 의하여 가르쳐왔지만, 정통교회라는 명칭 안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이 유명한 부흥사나 목사들을 통하여 혹은 양육프로그램이나 이름있는 선교단체에서 ‘영적전쟁’ 혹은 ‘영성운동’,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다는 것이 현실이며, 우리는 이러한 이원론을 경계하여야만 한다. 그 이유는 이원론은 다른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때로는 의인을 고난당하게 하시며, 악인을 형통하게 하실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고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고난이 천국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미스바님의 댓글
미스바다 락방을 이단으로 모는 신학자들의 주장을 퍼오신 것 같은데, 저는 다 락방의 신학사상이 이원론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 락방의 신학은 정통 장로교 신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메시지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때문에 다 락방 신학을 이원론으로 모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차근차근 정리해서 말씀드리도록 하죠.
호산나님의 댓글
호산나위 글에서 ㄷㄹㅂ에 대한 오해로 쓰여진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ㄷㄹㅂ의 잘못된 신학적 교리에 대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길지만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