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과 성 | 사랑과 성, 그리고 언약 (18) 성결서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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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8년 6월 23일 화요일 오후 06시 15분 50초
제 목(Title): 서약서
1학년 입학때 '서약서'라는 것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은 '일체의 정치활동에 참여할 경우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다'하는 내용이었다. 순진한 신입생들은 거의 모두 서명을 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 내에서 정치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교직원 학생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버렸다. 최후에 학교측에서 들고나온 카드는 '서약서'였고 학장님은 정원은 80%까지 자르겠다고까지 호언하셨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거부까지 강행하면서 버텨보았지만 학교측에 있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보아야할 이유는 자명했다.
'서약', 혹은 '맹세'라는 것, 세상일에 대해서도 그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처벌은 냉혹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이러한 우둔한 약속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 학교에서 '성결서약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 여고에서 이러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순결'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타락한 시대가 되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학교에서는 이 성결서약식을 '하나님 앞에서' 하였다. 아마 모두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 커플이 기숙사에서 동거하다가 발각되어 퇴사를 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누구나 한순간의 유혹이나 실수로 그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에 초점이 가기 보다는 약속을 어긴데 대한 '정죄'로 흐르기 쉬울 것이다. 성결 서약식을 한 학생들의 100%가 그 약속을 지키기는 힘들다고 볼 때 설사 모두가 그 약속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두려워서이기 보다는 서약을 지켜본 눈들을 의식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혹, 그 커플의 경우처럼 발각되지는 않더라도 약속을 범한 사람의 경우 마음 속으로 부터 오는 자책감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 이것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우리로서는 여간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5:12)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24:3)
정말 갸륵한 말이기도 하지만,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성경은 율법을 쫓아난 의인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율법의 기능은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로인해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이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
하나님과의 최초의 약속, 절대절명의 약속인 '선악과의 계약'조차 우리는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 '너 왜 선악과 따먹었어!'하시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그 연약함을 깨닫게 놓아두셨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는 따가운 햇빛속에 계속 말라 비틀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었다. 날이 서늘해 질때까지 그들은 수십벌의 '나뭇잎 치마'를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지쳐서 수풀가운데 숨었을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누가 너희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을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그분의 크고 놀라운 구속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Testament=성약"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끊임없이 져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그분께서 하신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우리가 순간순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통해서도 우리의 연약함과 그 분의 동일하고 완전하심을 깨닫기를 바란다. 또한 실수한 이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은 동일한 용서를 우리가 베풀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신 사실을 잊지 않고 세계를 복음화하고자 하시는 그 뜻을 쫓아 늘 성령 충만함으로 복음전하는 사명 감당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hbh
글 쓴 이(By): hbh (CCMG)
날 짜 (Date): 1998년 6월 23일 화요일 오후 06시 15분 50초
제 목(Title): 서약서
1학년 입학때 '서약서'라는 것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은 '일체의 정치활동에 참여할 경우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다'하는 내용이었다. 순진한 신입생들은 거의 모두 서명을 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 내에서 정치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교직원 학생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버렸다. 최후에 학교측에서 들고나온 카드는 '서약서'였고 학장님은 정원은 80%까지 자르겠다고까지 호언하셨다.
학생들은 기말고사 거부까지 강행하면서 버텨보았지만 학교측에 있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보아야할 이유는 자명했다.
'서약', 혹은 '맹세'라는 것, 세상일에 대해서도 그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처벌은 냉혹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이러한 우둔한 약속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 학교에서 '성결서약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요즈음 여고에서 이러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순결'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타락한 시대가 되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학교에서는 이 성결서약식을 '하나님 앞에서' 하였다. 아마 모두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한 커플이 기숙사에서 동거하다가 발각되어 퇴사를 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누구나 한순간의 유혹이나 실수로 그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에 초점이 가기 보다는 약속을 어긴데 대한 '정죄'로 흐르기 쉬울 것이다. 성결 서약식을 한 학생들의 100%가 그 약속을 지키기는 힘들다고 볼 때 설사 모두가 그 약속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두려워서이기 보다는 서약을 지켜본 눈들을 의식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혹, 그 커플의 경우처럼 발각되지는 않더라도 약속을 범한 사람의 경우 마음 속으로 부터 오는 자책감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 이것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우리로서는 여간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5:12)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24:3)
정말 갸륵한 말이기도 하지만,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성경은 율법을 쫓아난 의인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율법의 기능은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로인해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이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
하나님과의 최초의 약속, 절대절명의 약속인 '선악과의 계약'조차 우리는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 '너 왜 선악과 따먹었어!'하시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그 연약함을 깨닫게 놓아두셨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는 따가운 햇빛속에 계속 말라 비틀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었다. 날이 서늘해 질때까지 그들은 수십벌의 '나뭇잎 치마'를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지쳐서 수풀가운데 숨었을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누가 너희의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을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그분의 크고 놀라운 구속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Testament=성약"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끊임없이 져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그분께서 하신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우리가 순간순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통해서도 우리의 연약함과 그 분의 동일하고 완전하심을 깨닫기를 바란다. 또한 실수한 이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은 동일한 용서를 우리가 베풀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신 사실을 잊지 않고 세계를 복음화하고자 하시는 그 뜻을 쫓아 늘 성령 충만함으로 복음전하는 사명 감당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h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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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톤전달자님의 댓글
바톤전달자서약식이 정죄의 도구가 되지 않고 코람데오하는 도우미가 됐으면 좋겠네요 서약했지만 지키지 못하신 분이나 계속 지키고 있는 분들이 사탄에게 속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누리며 행복한 신앙생활 누리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