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과 성 | [00026] 사랑과 성, 그리고 언약 (12)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우리아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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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쓴이(By): hbh (CCMG)
날 짜(Date): 1998년 01월 20일 화요일 22시 55분 05초 ROK
제 목(Title): 다윗과 밧세바
다윗과 밧세바 아까 글을 올리다가 세미나가 있어서 다 답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아의 아내’라고 나옵니다.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다윗’의 가장 아픈 기억과 그 교훈이 후손에게 끊임없이 전달된 것입니다. 대개의 영웅들은 후세에 미화되는 반면 성경의 인물들은 그 연약함과 실수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왕 재임기간 중에 두 번의 큰 실수를 범하는데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간접 살인을 저지른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백성을 계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윗은 그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눈물의 회개를 드렸죠. 시편을 읽다보면 가장 걸작의 시는 그러한 실패 가운데에서도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순간 탄생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의 핏줄이 섞임으로 인해 언약이 흐려지는 것은 김성일 장로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를 읽으면서 공감했던 내용입니다. 김성일 장로님은 밧세바가 벌건 대낮에 그것도 옥상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했던 대담함을 들어 가나안 여인 특유의 끼가 도사리고 있었지 않았는가 하였습니다.
라이프 성경의 주석에서도 밧세바가 본의 아니게 다윗을 유혹하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해석이 옳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해석이 저의 기발한 혹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부드러운 피부와 몸매가 엄청나게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밧세바의 미모는 다윗이 한눈에 반할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옥상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었고 사람을 보내어 그녀가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왕궁으로 청하게 됩니다.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11:4)
여기서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라는 말은 둘의 관계가 다윗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레위기를 보면 여인이 부정함을 입는 여러 경우가 나오는데 부정함을 깨끗케 하는 정결의식을 행했다는 말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므로 부정함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간음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율법은 기억하여 지키려 했다니 참 아이러니컬 합니다. 육신의 정욕에 어둡게 되면 다윗조차도 그렇게 되는 것을 볼 때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한다는 말이 있죠. 그 ‘동침’에 의해 밧세바 는 다윗의 아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이에 당황한 다윗은 전장의 우리아를 불러내어 그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충신 우리아는 전쟁의 때에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도리가 아님을 고하고 아내와 동침하지 않기로 다윗 앞에서 맹세까지 합니다.
이에, 다윗의 고민은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아와 오래도록 동침하지도 않은 밧세바가 아이를 낳았다 하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고 만일 자신의 아이인 것이 알려지면 온 백성이 그에게 손가락질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다윗의 영안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이에 우리아를 최전방 격전지로 보내어 죽게 합니다. 밧세바는 그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는 참회하고 눈물을 흘리죠.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다윗은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고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이 순간까지도 다윗은 그 죄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여호와는 다윗을 ‘악하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마음의 합한 자’,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비유와 책망을 통해 자신의 엄청난 죄를 깨닫게 됩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침상을 적시면서 회개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참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다(시6편).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죄를 자백하므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의 간음으로 인해 낳은 아들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교훈으로 인해 밧세바 또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밧세바의 마음을 돌아보시고 새로운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을 키우면서 그녀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여호와의 언약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에는 그러한 교훈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잠언 중 많은 부분이 색욕과 음녀, 간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밧세바의 가르침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잠2,5,6,7장).
특히 7장 같은 경우는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을 다루지 않았나 할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음녀는 육욕, 안목의 정욕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렸던 사탄의 간악함을 뜻한다고 생각 됩니다.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잠7:5)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7:26)
시편 6편의 다윗의 참회에서도 다윗의 죄는 그자신의 연약함과 그의 원 수, 대적을 인함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시6:6-8)
밧세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제 해석이 무리가 있다면 용서하여 주십시오.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신다면 하나님의 성령이 붙들어 주시므로 치우치지 않게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본문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여호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그리고 변치 않는 그의 언약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주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글쓴이(By): hbh (CCMG)
날 짜(Date): 1998년 01월 20일 화요일 22시 55분 05초 ROK
제 목(Title): 다윗과 밧세바
다윗과 밧세바 아까 글을 올리다가 세미나가 있어서 다 답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아의 아내’라고 나옵니다.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다윗’의 가장 아픈 기억과 그 교훈이 후손에게 끊임없이 전달된 것입니다. 대개의 영웅들은 후세에 미화되는 반면 성경의 인물들은 그 연약함과 실수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왕 재임기간 중에 두 번의 큰 실수를 범하는데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간접 살인을 저지른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백성을 계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윗은 그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눈물의 회개를 드렸죠. 시편을 읽다보면 가장 걸작의 시는 그러한 실패 가운데에서도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순간 탄생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의 핏줄이 섞임으로 인해 언약이 흐려지는 것은 김성일 장로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를 읽으면서 공감했던 내용입니다. 김성일 장로님은 밧세바가 벌건 대낮에 그것도 옥상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했던 대담함을 들어 가나안 여인 특유의 끼가 도사리고 있었지 않았는가 하였습니다.
라이프 성경의 주석에서도 밧세바가 본의 아니게 다윗을 유혹하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해석이 옳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해석이 저의 기발한 혹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부드러운 피부와 몸매가 엄청나게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밧세바의 미모는 다윗이 한눈에 반할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옥상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었고 사람을 보내어 그녀가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왕궁으로 청하게 됩니다.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11:4)
여기서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라는 말은 둘의 관계가 다윗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레위기를 보면 여인이 부정함을 입는 여러 경우가 나오는데 부정함을 깨끗케 하는 정결의식을 행했다는 말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므로 부정함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간음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율법은 기억하여 지키려 했다니 참 아이러니컬 합니다. 육신의 정욕에 어둡게 되면 다윗조차도 그렇게 되는 것을 볼 때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한다는 말이 있죠. 그 ‘동침’에 의해 밧세바 는 다윗의 아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이에 당황한 다윗은 전장의 우리아를 불러내어 그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충신 우리아는 전쟁의 때에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도리가 아님을 고하고 아내와 동침하지 않기로 다윗 앞에서 맹세까지 합니다.
이에, 다윗의 고민은 더욱 커졌습니다. 우리아와 오래도록 동침하지도 않은 밧세바가 아이를 낳았다 하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고 만일 자신의 아이인 것이 알려지면 온 백성이 그에게 손가락질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다윗의 영안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이에 우리아를 최전방 격전지로 보내어 죽게 합니다. 밧세바는 그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는 참회하고 눈물을 흘리죠.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다윗은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고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이 순간까지도 다윗은 그 죄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여호와는 다윗을 ‘악하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마음의 합한 자’,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비유와 책망을 통해 자신의 엄청난 죄를 깨닫게 됩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침상을 적시면서 회개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참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다(시6편).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죄를 자백하므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의 간음으로 인해 낳은 아들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교훈으로 인해 밧세바 또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밧세바의 마음을 돌아보시고 새로운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을 키우면서 그녀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여호와의 언약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에는 그러한 교훈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잠언 중 많은 부분이 색욕과 음녀, 간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밧세바의 가르침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잠2,5,6,7장).
특히 7장 같은 경우는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을 다루지 않았나 할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음녀는 육욕, 안목의 정욕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렸던 사탄의 간악함을 뜻한다고 생각 됩니다.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잠7:5)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7:26)
시편 6편의 다윗의 참회에서도 다윗의 죄는 그자신의 연약함과 그의 원 수, 대적을 인함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시6:6-8)
밧세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제 해석이 무리가 있다면 용서하여 주십시오.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신다면 하나님의 성령이 붙들어 주시므로 치우치지 않게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본문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여호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그리고 변치 않는 그의 언약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주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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