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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전하기 | [00003] 왜 예수께서 부활하셔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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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05-26 21:43 view8,508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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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3]  왜 예수께서 부활하셔야 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그 창조원리에 따라 창조하신 후에 자신들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할 것을 계획하시고 (창 1:26)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 1:27). 즉, 영적인 피조물로 창조하시고 (창 2:7). 온 땅에 번성하고 충만하여 세계를 정복, 모든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는 완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창 1:28).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르면 고기는 바다에, 새는 공중에, 육축은 땅에 살도록 지어졌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어기게 되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고기가 바다를 떠나고, 나무가 땅에서 뽑히우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고 말 듯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뜻(창 1:26)에 따라 주어졌던 모든 축복을 잃고(창 1:28)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과 같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와 축복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동시에 그 권세와 축복도 잃고 맙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깨어져서는 안될 계약. 즉, 언약이 존재하였고 그 증표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보면서 우리의 창조원리를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과 함께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창 2:9,17).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병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 12:9)

  그런데, 우리는 가만 사단의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는 속임수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선악을 알게 되었으므로 벗었음을 알고 두려워하여 숨게 됩니다 (창 3:1-8). 영적으로 죽었으므로 육신의 눈만 밝아지게 된 것입니다 (창 2:25 -> 창 3:7,8).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이유를 물으십니다. 인류 최초의 청문회라고 할 수 있겠죠? 핑계, 책임전가에 급급한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뱀에게는 증인의 자격조차 주시지 않고 바로 저주를 내리십니다. 창 3:9-14의 청문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 떠난 죄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는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해결책을 바로 주십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고' (창 3:15)

  이때부터 우리, 특히 여자는 뱀을 보면 이유 없이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었나 봅니다. 뱀은 몸이 두 쪽이 나도 살지만 머리만 밟으면 제아무리 발버둥쳐도(뱀은 발이 없겠지만···) 죽고 맙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박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뱀이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사단도 권세가 있다는 것이며, 사단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로서 (엡 2:2), 그 권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사망권세'입니다 (계 6:8). 어쩌면, 우리 모두가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죄와 사단의 종 노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요8:44). 즉, 사망이 우리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 5:14).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떠나는 죄를 지어 영적으로 죽었으므로, 결국 우리는 사망권세 잡은 사단에게 사로잡혀 결국 육신적으로도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롬 6:23).

  그럼, 왜 '여인의 후손'이어야 하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고 (롬 6:23)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이므로 (히 9:27)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원히 영적으로도 죽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태초에 범죄하지 않았던 아담처럼 '죽을 이유가 없는', '원죄가 없는' 사람이 대신 우리의 죄를 감당하고 죽어야 하고, 때문에 그 대속자는 죄지은 아담의 후손이 아닌,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잉태된 '여인의 후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성경은 예수님이 원죄가 없으심을 '마지막 아담'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우리는 '사는 영'이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는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동시에, 우리를 실패시킨 사단의 세력을 꺾기 위해서는 더 큰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단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진 존재는 하나님 뿐이고, 결론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회복할 구원자는 '육신은 인간'이면서 '영은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

  '발뒤꿈치를 상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의미하고. '머리를 상하게 한다'라는 말은 사단의 최후 권세인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사단의 세력을 깨뜨렸음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오심과 부활은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수 천년 동안 예언되었습니다 (사 53:6). 구약의 모든 피 제사, 노아의 방주, 출애굽 사건, 유월절, 놋뱀, 도피성, 할례언약, 언약궤, 성막, 모든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들은 모두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심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에서는 우리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대속 제물을 수도 없이 드려야 했지만, 이제는 그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롬 8:2),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요일 3:8), 하나님을 만나고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4:6).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권능의 성령으로 임하시어 하늘나라 가는 그날 까지 인도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며, 세계복음화의 언약 붙잡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행 1:8).

  그리스도는 죽으신 지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인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 차례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고기 잡으러 갔었지만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예수를 본 후 그의 믿음은 죽기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구약은 모든 언약과 인물, 사건들이 이 언약, 메시아 언약을 기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계획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언약을 성취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셨다는 사실과 세계에 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방법과 전략까지 이루셨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입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체험되지 않는 한 절대 성경 66권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도의 현장을 보아야만 합니다. 모든 성경. 특히, 신약은 책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의 현장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태권도 교본을 많이 읽었다 할 지라도, 겨루기의 경험이 많은 사람하고는 실전에서 상대가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크신 소원도 바로 이 소식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는 것입니다 (행 1:8, 마 28:18-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축복은 이 일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기도의 방향은 '밑도 끝도 없이 축복 달라'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을 먼저 깨닫고 기도할 때, 사실적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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