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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성 | [00018] 사랑과 성, 그리고 언약 (4) 시아버지를 유혹한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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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05-28 02:20 view6,757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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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쓴이(By): hbh (CCMG)
날  짜(Date): 1998년 11월 1일 일요일 오전 01시 20분 17초
제  목(Title): 시아버지를 유혹한 며느리

많은 비신자들은 기독교인을 바라볼 때 윤리성을 많이 기대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보다도 성직자나 장로님 같은 분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더욱 냉혹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를 꼬집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에서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요구합니다. 자연스러운 기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의 훌륭한 윤리 교과서로 보는 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시아버지를 유혹하였던 며느리 ‘다말’의 사건입니다.

유다에게는 엘, 오난, 셀라라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은 전부 우상숭배를 하거나 언약이 없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들은 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형제들을 하나하나 치시기 시작 하였습니다.

다말은 첫째 며느리였는데 남편 엘이 죽자 이스라엘 풍습에 따라 둘째 아들이 다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말에게 씨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다말과 동침하였을 뿐, 땅에다가 설정하여 씨를 주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피임(避妊)을 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오난 또한 죽이십니다. 겁이 난 유다는 셋째 셀라에게는 이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모두 잃어버리면 대를 이을 후손이 없어지게 되니 말입니다. 유다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중요한 풍습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유다의 자녀와 며느리들 중에는 다말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알았기에,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야하는 소망은 오직 다말에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 셀라의 씨를 받지 못하면 메시아의 계보는 그만 끊어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다말은 극적인 처방으로 유다의 씨를 직접 얻기 위해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합니다. 이는 거의 당시 이스라엘 율법으로도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간음’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발각 즉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술 취했던 유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말과 동침하였고, 그 와중에 다말은 화대 대신에 유다의 중요한 소지품을 받아 놓았습니다.

나중에 다말의 잉태함이 드러나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의 행음을 인하여 죽이려 합니다. 그때 다말은 유다가 맡겼던 소지품을 내놓습니다.

이에 할 말은 잃은 유다는 다말에게 ‘네가 나보다 옳다.’라고 말하며 셋째 셀라에게 다말을 주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나 나올 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용납 하셨고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인용됩니다.

여기서 비윤리적인 성관계를 몇 가지 짚어 봅시다. 유다는 본처를 잃은 슬픔에 창녀와 잠을 잤고, 다말은 감히 시아버지를 속여 관계를 했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단지 씨만 받는 것을 포함하지 않으며 쾌락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유다에겐 특히 그랬습니다. 그 관점에서 둘째 아들 오난과 다말을 비교해보면, 오난은 다말과 접촉을 가지면서 쾌락을 얻었지만 씨를 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과부였던 다말을 색기 넘치는 여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남자를 한 번에 유혹하여 동침할 정도면 그럴 만도 할 것입니다. 다말과 유다와의 관계에 있어서 또한 쾌락이 배제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우리에게 ‘성’을 주심에 있어 ‘쾌락’과 ‘후대의 번성’을 동시에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움’을 배제한 ‘성’을 생각하는 것 또한 치우친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의 목적은 분명 언약의 대를 잇기 위한 씨 받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말의 선악을 분별하는 관점은 다말의 ‘중심’이었지 다말의 행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다말에 의해 보존된 ‘후대’가 바로 메시아, 예수님까지 이어졌으니, 당시의 상황은 인류전체의 구원이 흔들릴 수도 있는 절대 절명의 위기였던 것입니다.

다말의 목숨을 건 ‘비행’에 의해, 언약의 계보가 이어졌던 놀라운 사건, 이것을 ‘기독교인의 윤리’를 외치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h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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