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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성 | [00025] 사랑과 성, 그리고 언약 (11) 사랑과 정욕을 착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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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06-06 03:46 view11,903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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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쓴이(By): hbh (CCMG)
날  짜(Date): 1998년 11월 11일 수요일 오후 11시 10분 18초
제  목(Title): 사랑과 정욕을 착각하지 말라

‘사랑과 정욕을 착각하지 말라.’ 어느 목사님이 자신의 아들에게 쓴 편지,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런 남편이 되어라.’라는 책에 나온 구절입니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흥분된 감정이 정말 그녀를 사랑해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한순간 이성에게 느끼는 충동적 감정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이성을 두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것이다’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를 통해서는 분명 사랑이냐 정욕이냐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역경을 이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만 정욕은 책임을 동반하지 않으며 자칫 모두에게 파멸의 쓰디쓴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저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이 되니라.”(삼하13:1-2)

다윗의 아들인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를 연모하게 된다. 이른바 ‘상사병’이 날 정도였으니 그 감정이 얼마나 깊었던 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암논은 과연 다말을 사랑하였던 것일까요? 이어서 벌어진 다말과 암논 사이의 일련의 사건들은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정욕에 불과했음을 말해줍니다.

암논의 심정을 알게 된 친구 요나답은 다말과 암논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게 되고, 결국 병간호를 핑계로 다말을 암논의 집까지 불러들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다말은 과자를 구워 암논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나 암논은 과자는 먹지 아니하고, 방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어 보내고는 다말에게 과자를 먹여달라고 합니다.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10-11)

이제 처음 단둘이 맞이한 자리에서 ‘동침하자’라고 말하다니, 암논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 모양입니다. 놀란 다말이 대답합니다.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12)

그러나, 이미 암논의 정욕은 이성을 넘어서 악의 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 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14)

암논은 한마디로 이복누이를 강간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소욕을 채우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암논은 아주 의외의 태도로 돌변합니다.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15)

상사병이 날 정도로 연애하던 다말을 동침하자마자 그 연애하던 감정보다 더 미워하게 된 사실은 그의 감정이 결코 사랑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암논의 감정은 결국 말초적이고 충동적인 정욕에 불과 했던 것입니다. 이윽고 암논은 하인들을 시켜 울며 누워있는 다말을 끌어 내쫓고 문을 걸어 잠가버립니다. 순간 다말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을 지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러나, 비극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다말의 친 오빠이자 암논의 이복형제였던 압살롬은 이 소식을 듣고 복수를 계획하였고 두 해가 지난 후 결국 암논을 죽이게 됩니다. 이 사건 후 압살롬은 피신하였고 다윗의 용서를 얻어내지만 다윗과는 매우 불편한 관계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민심을 도적질하여 반역을 꾀합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아들에게 쫓겨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온갖 모욕과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한순간의 정욕이 남긴 열매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일들이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다윗의 심정은 참으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족속 시므이가 그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을 때에도 다윗은 그 저주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 하며 그를 죽이려는 신하들을 말렸습니다. 사실 이 사건을 두고 다윗은 전혀 잘못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을까요?

그 답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살인하고도 죄를 깨닫지 못하던 때에 선지자 나단을 통해 이르셨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12:9-11)

결국 나단의 예언대로 다윗의 가문은 불륜과 피의 복수와 반역으로 얼룩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았기에 다윗은 온갖 모욕에도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를 뒤흔든, 나아가 언약의 핏줄을 흔든 이 중대한 사건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에게 유혹이 없을 수 없고 정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진열대의 빵을 보고 식욕이 들 듯이 우리의 정욕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빵을 주인과 동의 없이 먹어 욕구를 채운다면 불법이 되며, ‘금전적 거래’라는 제도를 통해 이해관계가 성립되어야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을 허락하실 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성’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열어보도록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축복의 날에 이르러 서로에게 이 선물이 되어주는 것은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은혜를 구하고 다윗이 겪었던 쓰디쓴 상처의 경험을 돌이키는 마음으로 우리안의 죄와 육신의 체질을 이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성’ 또한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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