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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세계복음화신문 특별기고(2)]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 그 이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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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07-28 04:10 view10,503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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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 그 이후’(1)

나에겐 꿈이 있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 다다른 안개가 자욱이 낀 곧은 길. 양쪽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을 서 그늘을 드리우며 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이마를 따스하게 비추는...

 초등학교 때부터 난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유난히 이러한 풍경이 많았다. 일기장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나는 인생이 매우 고달프고 긴 레이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가 이해가 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계속 사업에 실패하시면서 시작된 우리 가족의 불행. 암울한 현실 속에서 나를 지탱했던 것은 꿈이었고, 난, 공부가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절박하게 믿었다.

그렇게 뒤돌아보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드디어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난 그것이 긴 터널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버지의 실패는 계속되었다. 그 이후로 계속되는 고통, 절망... 난 정말 궁금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더 헌신하시고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왜 그토록 고생하시는지.

이러던 나에게 한 사람이 나타났다. 숨 막힐 것 같았던 나의 상황에서 그 사람은 나에게 영혼의 안식처 같았고, 그렇게 의지하며 서로의 꿈을 키워 갔다. 바라는 게 너무 많았기에 실망도 컸던 것일까.

결국 우리는 헤어졌고 갑자기 나를 지탱해오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은 결국 이대로 터널 안에서 끝나고 말거라는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밤이 되어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이렇게 찾아온 불면증과 우울증은 몇 주 동안 날 괴롭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나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삶이 끝나면 고통도 끝나겠지... 어려부터 나를 인도해왔다고 믿었던 예수님은 그 순간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아파트 10층에 올라갔다.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끊임없이 되물었다. 과연 이게 나의 끝인지. 정말 다른 길은 없는 것인지... 그 순간 나를 돌려 세운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 아니면 꿈에 대한 미련이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난 뒤돌아서 절박한 심정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너무 힘이 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 절박한 기도 후 찾아온 놀라운 변화

놀라운 변화가 나에게 왔다. 그 집회에서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슴 벅찬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 다가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나의 무엇과도 상관없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갑자기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의지하지 않았던 내가 바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죄인임을 고백한 순간 참 복음과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가 깨달아졌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사건이었다는 것이 비로소 믿어졌고, 또한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던 영적 존재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했던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해주세요. 저를 고통 받게 했던 흑암의 세력을 물리쳐주세요. 저를 인도해주세요.”

그날 난 태어나서 가장 편하고 긴 잠을 잤다. 깨어보니 햇살 가득한 아침이었다. 어려서부터 그토록 꿈꾸던 그림속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수 톤의 무게처럼 느껴졌던 주위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분이 나와 정말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 하나 외에는...

너무 기뻤다. 나의 가장 큰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다.

“아버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아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심각하게 이야기하셨다. “하나님이 살아계셨으면 우리 집이 이렇게 망했겠냐?”

기가 막혔다. 19년 동안 교회에 다니신 집사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평생을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저와 우리 가족은 영원히 이 축복을 몰랐을 거예요.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망한 거예요.”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셨지만 이내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듣기 시작하셨다. 그날 우리 네 식구는 단칸방에 나란히 누워, 길고 긴 은혜와 감사의 밤을 지새웠다.

훗날 아버지께서는 그날 내가 드렸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말씀을 사모하고 복음을 전하시는 진짜 집사님이 되셨으니 나에겐 홍해가 갈라진 것보다도, 해와 달이 멈춘 것보다도 더 큰 기적이었다.

◆ 복음 전파와 학업 증거의 상관 관계 고민

이렇게 은혜를 받고 주위를 돌아보니 나와 같은 상황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은혜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문제라는 것이 와 닿았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마다 너무나도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렇게 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을 체험했고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 기쁨은 점차 잊혀져갔다.

나의 최고의 가치였던 학업과 성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수업을 빼먹고 학교 예배나 전도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연히 주위에서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학업 때문에 심각히 고민하는 후배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난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시고 너의 학업에 대한 고민도 분명히 해결해 주실 거야!”

당시 후배의 묘한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마 속으로 ‘너나 잘해’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 후배는 다음해에 잘 졸업해서 취직하였고 난 낙제점수를 받아 대학원 입학이 취소되고 한 해 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전해 들리기 시작했다.

“저 선배 교회에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졸업도 못했대.” “신학대학에 간다던데?”...

그때가 되어서야 난 내가 오히려 복음의 전파를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업의 현장에서는 학업의 증거가 있어야 힘 있는 전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병행하는 것이 어려웠고 학업에서의 부담은 다시 신앙생활의 침체로 이어졌다.

그 때부터 나에게 학업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많은 메시지를 듣고 책을 찾아보았지만 재미있게도 하나님께서는 영화 한편을 통하여 가장 정확한 답을 주셨다.

바로 1981년 오스카상 수상작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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