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세계복음화신문 특별기고(3)]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 그 이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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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07-28 04:17 view11,401 Comment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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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을 통해 학업·기능 발견하는 시각 바뀌어
영화 ‘불의 전차’는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각본상, 의상상, 작곡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에서 금메달을 안겨준 두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 음악을 배경으로 영국 육상대표 선수들이 해변을 달리는 모습은 지금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자녀였던 에릭 리들과 유대인 출신 해롤드 아브라함은 모두 영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육상선수들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달렸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참 스포츠 정신과 개인적 신념의 관계를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조명하고 있다.
사실 요즈음 이런 영화가 나왔다면 대중적으로 외면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스토리임에도 당시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처음 케이블 채널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저 감동적인 오래된 스포츠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업과 신앙 사이에서 깊이 갈등하고 있던 중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나에게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아브라함은 당시 종교적, 사회적으로 무시와 차별을 당했던 유대인이 열등하다는 의식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자 육상선수가 되려고 했다. 명문 캠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잉글랜드 대표선수에 선발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스코틀랜드 대표 리들을 만나면서부터 열등감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아브라함은 당시 아마추어 선수로는 금기시됐던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지만, 그 트레이너가 아랍계였다는 점은 결국 그의 승리에 대한 명분이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 리들은 어떠한 구체적인 목표도 갖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저 뛰는 것이 즐거워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리들의 모습은 아브라함의 심각한 연습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리들이 경기에서 승리한 후에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은 바로 그가 왜 달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믿음을 경주와 비교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확실한 길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달리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진심으로 구하면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리들에게 있어 육상경기는 그 자체가 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생 제니는 리들이 올림픽에 참여하게 되면서 예배와 말씀을 소홀히 하게 되고 선교의 사명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에 리들은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주님은 내게 중국 선교의 사명을 주셨지만 내게 빨리 달리는 재능도 주셨어. 내가 달릴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낀단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곧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야.”
그러나 이러한 리들의 고백은 곧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공교롭게도 파리 올림픽 100미터 결승이 주일에 열리게 된 것이다. 주일성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교사인 리들이 주일에 경기를 한다는 것은 신앙을 등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애국심과 신앙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리들은 결국 황태자의 설득과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100미터 결승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자칫 조국을 배반한 자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었지만 주일, 육상경기가 진행되던 그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성경을 낭독하는 리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28~31)
경기에 참석하여 넘어지고 좌절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말씀의 의미가 더욱 더 깊이 전달되는 듯 했다. 비록 가장 뛰어난 우승후보였던 리들이 경기를 포기했지만 아브라함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마침내 100미터 금메달을 따게 된다. 하지만 경기 후에 탈의실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승리의 기쁨보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리들은 그의 신념에 감동한 동료가 양보해 다른 날에 열리는 400미터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게 됐지만, 리들은 100미터 선수였기 때문에 400미터의 우승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미국 선수가 리들에게 준 쪽지에는 승리를 암시하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길 것이다.” (삼상 2:30)
쪽지를 오른손에 꼭 쥐고 출발선을 떠난 리들은 마침내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했다. 기적이었다. 후에 그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 200미터는 내가 달렸지만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께서 직접 달리셨다”고 대답했다.
감독 휴 허드슨은 마치 “이것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 리들의 경기 장면을 배경으로 그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들의 기적 같은 우승을 바라보던 아브라함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 무언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듯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1978년 사망하기까지 영국의 스포츠 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리들은 파리 올림픽 이듬해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로 떠나 이후 44세의 일기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죽기까지 선교에 헌신했다. 리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뛰었으며 그에게 있어 금메달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비할 것이 못 됐다.
그에게 뛰는 순간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을 뿐 아니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이 영화는 나의 기능과 학업을 바라보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어집니다]
* 그사이 세계복음화신문이 폐간되어 더이상 기고문을 못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2020년이 되었네요. 다음편을 위해 기도중입니다~
영화 ‘불의 전차’는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각본상, 의상상, 작곡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에서 금메달을 안겨준 두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 음악을 배경으로 영국 육상대표 선수들이 해변을 달리는 모습은 지금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자녀였던 에릭 리들과 유대인 출신 해롤드 아브라함은 모두 영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육상선수들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달렸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참 스포츠 정신과 개인적 신념의 관계를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조명하고 있다.
사실 요즈음 이런 영화가 나왔다면 대중적으로 외면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스토리임에도 당시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처음 케이블 채널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저 감동적인 오래된 스포츠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업과 신앙 사이에서 깊이 갈등하고 있던 중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나에게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아브라함은 당시 종교적, 사회적으로 무시와 차별을 당했던 유대인이 열등하다는 의식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자 육상선수가 되려고 했다. 명문 캠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잉글랜드 대표선수에 선발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스코틀랜드 대표 리들을 만나면서부터 열등감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아브라함은 당시 아마추어 선수로는 금기시됐던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지만, 그 트레이너가 아랍계였다는 점은 결국 그의 승리에 대한 명분이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 리들은 어떠한 구체적인 목표도 갖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저 뛰는 것이 즐거워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리들의 모습은 아브라함의 심각한 연습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리들이 경기에서 승리한 후에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은 바로 그가 왜 달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믿음을 경주와 비교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확실한 길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를 끝까지 달리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 진심으로 구하면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리들에게 있어 육상경기는 그 자체가 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생 제니는 리들이 올림픽에 참여하게 되면서 예배와 말씀을 소홀히 하게 되고 선교의 사명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에 리들은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주님은 내게 중국 선교의 사명을 주셨지만 내게 빨리 달리는 재능도 주셨어. 내가 달릴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낀단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곧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야.”
그러나 이러한 리들의 고백은 곧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공교롭게도 파리 올림픽 100미터 결승이 주일에 열리게 된 것이다. 주일성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교사인 리들이 주일에 경기를 한다는 것은 신앙을 등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애국심과 신앙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리들은 결국 황태자의 설득과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100미터 결승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자칫 조국을 배반한 자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었지만 주일, 육상경기가 진행되던 그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성경을 낭독하는 리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28~31)
경기에 참석하여 넘어지고 좌절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말씀의 의미가 더욱 더 깊이 전달되는 듯 했다. 비록 가장 뛰어난 우승후보였던 리들이 경기를 포기했지만 아브라함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마침내 100미터 금메달을 따게 된다. 하지만 경기 후에 탈의실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승리의 기쁨보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리들은 그의 신념에 감동한 동료가 양보해 다른 날에 열리는 400미터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게 됐지만, 리들은 100미터 선수였기 때문에 400미터의 우승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미국 선수가 리들에게 준 쪽지에는 승리를 암시하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길 것이다.” (삼상 2:30)
쪽지를 오른손에 꼭 쥐고 출발선을 떠난 리들은 마침내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했다. 기적이었다. 후에 그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 200미터는 내가 달렸지만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께서 직접 달리셨다”고 대답했다.
감독 휴 허드슨은 마치 “이것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 리들의 경기 장면을 배경으로 그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들의 기적 같은 우승을 바라보던 아브라함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 무언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듯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1978년 사망하기까지 영국의 스포츠 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리들은 파리 올림픽 이듬해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로 떠나 이후 44세의 일기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죽기까지 선교에 헌신했다. 리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뛰었으며 그에게 있어 금메달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비할 것이 못 됐다.
그에게 뛰는 순간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을 뿐 아니라, 기도와 찬양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이 영화는 나의 기능과 학업을 바라보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어집니다]
* 그사이 세계복음화신문이 폐간되어 더이상 기고문을 못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2020년이 되었네요. 다음편을 위해 기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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